2010년의 장중첩증 환아 사망과 2023년의 추락환자 사망, 의대정원만 늘리면 혹은 보험수가만 올리면 문제가 해결될까?

곽경훈
곽경훈 인증된 계정 · 작가 겸 의사
2023/04/05
1.
미국의 드라마는 대부분이 시즌제다. 그렇지만 모두가 처음부터 12-24부작으로 계약하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는 '파일럿 에피소드'라 불리는 1-2회 분량의 방송을 선보인 후에 반응이 좋아야 나머지 시즌 전체를 계약할 수 있다. 그래서 제작사는 파일럿 에피소드에 심혈을 기울인다. 앞으로 펼쳐질 내용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파일럿 에피소드가 시청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아예 기회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프롤로그가 재미있어야 한다. 프롤로그부터 독자를 꽉 잡아끌며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 실패하면 중반과 후반이 아무리 멋지고 훌륭해도 의미없다. 

그래서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를 쓸 때도 프롤로그에 가장 힘을 기울였다. 

2.
의사가 되고 싶지 않았지만 현실적 이유에 의과대학에 입학했고 엉망진창의 성적으로 졸업한 후, 역시 이런저런 현실적 이유로 '어쩌다보니' 응급의학과 레지던트가 된 주인공이 '파란만장'과 '좌충우돌'이란 말로도 모두 표현하지 못할 4년을 보내는 이야기는 전형적인 '성장스토리'에 해당한다. 또, 거친 괴짜이며 타고난 싸움꾼인 주인공이 불합리한 집단과 그걸 묵인하는 다수에 맞서 투쟁하는 내용은 '비정한 총잡이, 사악한 갱단 그리고 무력한 다수'가 등장하는 서부극의 전형적인 구조다. 거기에 '고결한 이상주의자'도 아니며 '선량한 휴머니스트'도 아니지만 '쪽팔리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나름의 정의를 추구하는 주인공은 '21세기의 이야기'에 잘 어울린다. 
그러나 프롤로그가 충분히 재미있지 않으면 모두 의미없다. 프롤로그를 읽으면 '끔찍하고 불쾌하다'며 아예 책을 덮거나 그 강렬함에 끌려 마지막 페이지까지 책을 덮을 수 없도록 만들어야 했다. 너무 싫거나 혹은 정말 좋거나, 그런 강렬함이 필요했고 그 중간 어딘가의 미적지근함은 어떡하든 피해야했다. 그렇게 고른 프롤로그의 첫 머리는 다음과 같다.

인간의 손은 놀라운 기관이다. 섬세하고 정교하게 움직일 뿐 아니라 다양한 동작이 가능하다. 다른 동물도 ...
곽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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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권의 메디컬에세이를 쓴 작가 겸 의사입니다. 쓸데없이 딴지걸고 독설을 퍼붓는 취미가 있습니다. <응급실의 소크라테스>,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반항하는 의사들>, <날마다 응급실>, <의사 노빈손과 위기일발 응급의료센터>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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