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신부님의 유서와 진지개떡

살구꽃
살구꽃 · 장면의 말들에 귀를 모아봅니다.
2023/03/31
내가 사랑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진 - 픽사베이
 바람처럼 홀연히 이 세상에 왔다가 구름처럼 하느님 품으로 흘러갑니다.
'하느님은 정말 사랑이십니다' 는 말씀처럼 천년을 하루같이 사시는 
그분 속으로 홀로 걸어 들어갑니다.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마음 때문에' 두렵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믿고 섬기고 사랑했던 그분을 이제 곧 만날 수 있다는 
'마음 덕분에' 설렙니다.
사제는 '사랑에 빚진 자'라고 했죠. 
하느님 사랑에 빚지고 부모님 사랑에 빚지고 세상 사람들 사랑에 빚만 진
 한 사제가 사랑하는 어머니와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가슴속 깊이 묻어뒀던 
글을 남깁니다.
이 세상에 저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 마리아! 불교도였던 어머니! 
자식들이 사제품을 받지 못할까봐 낯선 종교에, 낯선 기도문, 낯선 세례명을 
십자가처럼 평생 걸머진 사랑 많은 나의 어머니! 
천주교 신부되면 마누라 없이 평생 혼자 살아갈 것이 걱정되셔서 
뒤돌아 눈물을 훔치시던 호수 같은 우리 어머니!
남편 요셉을 성요셉축일에 하늘로 먼저 보내시고 홀로 밤을 지새우셨던 어머니! 
그래도 아버지 곁에 묏자리를 사놓으셨다고 죽어서도 남편 곁에 있을 수 있다고 
마냥 소녀처럼 행복해 하셨던 우리 어머니! 
평생 쌓아둔 중압감을 못 이겨 중풍까지 끌어안고 휠체어에 앉아 홀로 집에서 
수도자처럼 수행생활을 하고 계신 어머니 마리아!
어머니가 그렇게 바라던 지혜로운 며느리와 토끼 같은 손자손녀를 
품에 못 안겨드려서 미안합니다.
외로워하시는 어머니 곁에 있어 주지 못하고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간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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