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의 정치와 정의> : 다섯 가지 억압 개념으로 재구성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10/18
 '정의'를 다시 질문하며.


나는 줄곧 "정의는 목소리다."라는 말로 정치적 입장을 표명해 왔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남기 위해 숨죽였던 시간들, 언어를 갖지 못해 눈물로 지새웠던 밤들이 '나만의 언어를 갖고 말하기 시작'하면서 '저항하는 힘'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또 한 번 여성들을 비탄에 젖게 만든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발생하면서, '정의'의 본질을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피해 당사자들이 목이 터져라 외쳐도, '말하는 주체'만 존재하고 '듣는 주체'가 부재한다면, 그 목소리는 사장되기 마련이다. 구덩이 속에 파묻힌 비명 소리를 공론화시키려면, 사회 구성원들이 경청할 자세를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은 이상 어렵게 울려 퍼진 목소리는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고, 피해자들은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악순환만 반복된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매리언 영은 이러한 정의의 쟁점을 누구보다 잘 파악한 인물이다. 영은 대표작 <차이의 정치와 정의>에서 "정의에 관한 합리적 성찰은 '듣는 것'에서부터, 어떤 외침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1)"라는 주장을 통해, 기존의 분배적 정의관에 도전한다.

다시 말해,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재화나 지위의 분배가 아닌 '지배'와 '억압'의 관점에서 불평등한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존 롤스의 자유주의적 정의관에 따라 오직 '분배'만이 정의 문제로 축소되는 한국 사회에서 영이 제기한 '차이의 정치'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나는 지금부터 이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영이 제시한 다섯 가지 억압 개념을 빌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되풀이되는 성범죄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도대체 우리는 누구의 말을 듣고, 누구의 말을 듣지 않았기에 비극을 막지 못했단 말인가.


다섯 가지 억압 개념으로 재구성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이른바 '텔레그램 N번방'이라 불리는 SNS 불법 성 착취 범죄가 보도되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퀴어 페미니스트, 비건 지향인, 천주교 신자, 그리고 그 무엇
141
팔로워 201
팔로잉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