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4
글에 100% 공감하며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얼룩소에 들어온지 3주차에 느끼는 점이라면 솔직히 저와 비슷한 견해를 공유하는 분들이 많아 너무 편하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저와 다른 견해를 가지신 분이라면 다소 거북할 수 있겠네요. 물론 그것이 자유로운 공론장의 묘미지만요.
그러나 >이준석은 무능하다<란 제목의 글이 '에디터픽'을 당하는 건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준석 대표를 향한 비판, 정당하고 또 더 활발히 이뤄져야 합니다. 그럼에도 이준석 대표가 무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선 제목만 보고 화들짝 놀라 도망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용을 보면 너무 타당한 제목이지만 말이에요.)
좋은 공론장이란 무엇일까요. 에디터가 중립을 지키는 것? 아니면 수의 논리에 벗어나 옳다고 ...
얼룩소에 들어온지 3주차에 느끼는 점이라면 솔직히 저와 비슷한 견해를 공유하는 분들이 많아 너무 편하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저와 다른 견해를 가지신 분이라면 다소 거북할 수 있겠네요. 물론 그것이 자유로운 공론장의 묘미지만요.
그러나 >이준석은 무능하다<란 제목의 글이 '에디터픽'을 당하는 건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준석 대표를 향한 비판, 정당하고 또 더 활발히 이뤄져야 합니다. 그럼에도 이준석 대표가 무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선 제목만 보고 화들짝 놀라 도망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용을 보면 너무 타당한 제목이지만 말이에요.)
좋은 공론장이란 무엇일까요. 에디터가 중립을 지키는 것? 아니면 수의 논리에 벗어나 옳다고 ...
정치학을 배우고 있어요. 같이 크게 크게 때론 조그막하게 이야기 나눠보면 좋겠네요. 멋진 시선들을 기다립니다.
안녕하세요 유영진님. 개인적으로 위근우씨의 말에 동의합니다. 한 예시로 이번 민주당에서 이뤄진 차별금지법 토론이 있겠죠. 과연 동성애 혐오를 뿜어내는 자들을 소수자와 한 곳에 몰아넣는 게 진정한 의미의 담론장이 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오히려 차별을 정당화하는 과정으로 악용될 것 같아요.
차별 담론은 교묘하게 진실과 섞여있어요. 뚜렷이 추출해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차별적 발언을 주체하지 못하는 이들을 모두 공론장에서 쫓아낼 수도 없습니다. 민주주의와 정의의 균형, 참 어려워서 저도 조심스럽습니다.
개인적으론 발언자보단 발언 행위를 규제하는 규칙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이유입니다- 자유롭게 토론하고 말하되, 공적인 자리에서 상대를 비인간화하는 발언을 금하자는 것이지요. 말은 내용보다도 형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차별금지법 논의가 더 다양해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좋은 지점 던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비록 제가 격하게 비판하는 관점이기는 합니다만) 위에서 말씀하신 '다른 견해를 가지신 분' 들에 대해서 약간 다른 견해를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칼럼니스트 위근우 씨가 대표적인데요,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 에서 그는 차별과 혐오를 지지하는 사람들까지 중립적이고 대등하게 다루어서는 안 되며, 그들을 공적 논의의 장에서 퇴출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중립적' 인 공론장을 만드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모두의 의견을 진지하게 경청하겠다며 유독한 헛소리까지 경청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근우 씨의 논리에 따르면, 얼룩소에서 이준석을 추종하거나 '이대남 정체성' 을 갖춘 이용자는 적발되는 대로 전부 추방하는 것이야말로 얼룩소에서의 "공적 논의를 위한 필터링"(p.194)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관점은 《한국, 남자》 로 진보계에서 큰 명성을 얻은 저술가 최태섭 씨나, 소위 '탈진실(post-truth)의 시대' 담론을 이끄는 논객들에게서도 비슷하게 발견되곤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런 류의 견해에 단호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틀렸을 수도 있으므로, 글쓴이께서는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민주주의에 가장 좋은 점은 민주주의 부정하는 사상조차 떠들 수 있다는 점이다 라고 누가 그랬더라?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좋은 말입니다. 동의합니다. 그런데 늘 정치계는 정보가 미묘하게 폐쇄적이라 일반인이 알 수 있는 영역이 너무 제한적이지 않나요? 전 그래서 정치인 평가는 은퇴자 기준으로 하는 편입니다만. 어려운 문제에요.
공감하고 동의하는 바입니다.
정말 좋은 의견입니다.
답글쓴이의 말씀 동의합니다. 에디터픽에서 기사 제목을 수정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짚어주셔서 감사드려요!
답글쓴이의 말씀 동의합니다. 에디터픽에서 기사 제목을 수정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짚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정말 좋은 의견입니다.
공감하고 동의하는 바입니다.
말씀하신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비록 제가 격하게 비판하는 관점이기는 합니다만) 위에서 말씀하신 '다른 견해를 가지신 분' 들에 대해서 약간 다른 견해를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칼럼니스트 위근우 씨가 대표적인데요,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 에서 그는 차별과 혐오를 지지하는 사람들까지 중립적이고 대등하게 다루어서는 안 되며, 그들을 공적 논의의 장에서 퇴출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중립적' 인 공론장을 만드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모두의 의견을 진지하게 경청하겠다며 유독한 헛소리까지 경청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근우 씨의 논리에 따르면, 얼룩소에서 이준석을 추종하거나 '이대남 정체성' 을 갖춘 이용자는 적발되는 대로 전부 추방하는 것이야말로 얼룩소에서의 "공적 논의를 위한 필터링"(p.194)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관점은 《한국, 남자》 로 진보계에서 큰 명성을 얻은 저술가 최태섭 씨나, 소위 '탈진실(post-truth)의 시대' 담론을 이끄는 논객들에게서도 비슷하게 발견되곤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런 류의 견해에 단호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틀렸을 수도 있으므로, 글쓴이께서는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민주주의에 가장 좋은 점은 민주주의 부정하는 사상조차 떠들 수 있다는 점이다 라고 누가 그랬더라?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좋은 말입니다. 동의합니다. 그런데 늘 정치계는 정보가 미묘하게 폐쇄적이라 일반인이 알 수 있는 영역이 너무 제한적이지 않나요? 전 그래서 정치인 평가는 은퇴자 기준으로 하는 편입니다만. 어려운 문제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