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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의 진짜 문제는 “무능”이다.

1. 싸가지 없는 이준석?
   
이준석은 한국 정치의 핵에 있다. 언제나 이슈를 몰고 다니며, 그의 최연소 당 대표 선출은 분명 ‘사건’이었다. 아무리 국민의힘이 궤멸한 상태에서 선출된 당 대표였다고 해도 이준석은 함께 정치에 입문했던 박근혜 키즈 손수조와는 다른 궤적을 보이며 “0선 중진”이라는 별명에도 꾸준히 종편, 예능 할 것 없이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이준석은 정치인으로서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 가기 시작한다.
   
이준석에게 붙는 긍정적 이미지로는 이런 것들이 있다. 하버드 출신의 수재, 젊은 논객, 능력주의에 앞장서는 “능력 있는 정치인” 같은. 동시에 이준석은 양날의 검처럼 부정적인 이미지도 가지고 있다. 그런 단점은 보통 장점을 뒤따른다. 이런 이미지를 압축하고 압축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능력 있지만 버릇없는 젊은 정치인” 아마 이준석에 비판적 입장을 가진 사람도 ‘저 사람 사상에 동의가 안 돼서 그렇지 실력은 있는 사람이야’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준석은 숱한 문제를 일으키면서도 말썽을 피우지만, 그래도 능력은 가진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그런 통념에 의문을 갖는다. 이준석은 정말 실력이 있긴 한 정치인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이준석은 무능한 정치인이다.
   
2. 이준석의 진짜 문제 1 세탁기의 배신
   
이준석은 자신의 대담집 『공정한 경쟁』에서 사회의 진보보다 과학의 진보가 여성의 권익을 상승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은 그런 거다. 본인은 공학자이고 과학자라서 사실에 입각해 사고한다. 이 말은 한편으로는 사회의 진보를 대표하는 사회과학적 사고나 사회사상의 조류를 평가절하하는 맥락에 놓인다. 사회의 진보보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여성의 권익 상승에 더 기여했다, 그런 비과학적인 사상 붙잡을 바에는 과학해라, 뭐 이런.
   
이 말은 틀렸다. 그러니까 세탁기, 피임 기구 같은 ‘여성을 위한’ 과학의 도구가 발명되지 않은 사회에서의 가사노동, 출산·육아에서의 불평등은 사회마다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인류학적으로 접근해 보면 이런 과학·기술의 발전과는 무관하게 한 사회는 다른 사회와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말이 근본적으로 틀린 이유는 이런 관점은 과학·기술 발전 이전의 성 역할의 불평등을 묵인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과학·기술이 발전하지 못하면 여성은 여전히 가사노동과 출산·육아에서 고통 받아도 된다고 말하는 거다. 이게 숨겨진 맥락이다.
   
이런 식으로 논리적으로 반박만 한다면, 굉장히 이 사람도 알맹이 없이 반박하는 사람이네 이런 생각을 할 게 뻔해서 부연한다. 역사학자 김덕호가 집필한 『세탁기의 배신』은 이준석의 주장에 명확하게 반박한다. 이준석의 생각처럼 사회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가정용 전기세탁기가 상용화되었다고 해서 단순히 여성이 가사노동에서 해방된 것은 아니다. 이전에는 세탁부를 불러 해결했던 빨래가 이제 가정으로 넘어온다. 1930년 미국의 중간계급 여성 잡지 『레이디스 홈 저널』은 가사노동시간을 줄이고자 발명된 가전제품, 수도 공급, 영양학적 지식이 오히려 여성의 가사노동시간을 증가시켰다는 구체적 통계를 제시한다. 이 과정에서 가사노동은 늘어나고 제품의 탄생을 통해 경제노동보다 열등하게 다루어졌다. 사회는 이만큼 만만하지 않다. 다양한 변수가 상호작용하고, 상식만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준석은 명확하게 틀렸다.
3. 이준석의 진짜 문제 2 출산율과 결혼

“과연 민주당의 현재 국회의원이란 사람들이 2000년생 남성 33만 명 태어나고, 2005년생 여자들 21만 명 태어났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지? 이 150대 100의 결혼적령층의 성비를 어떻게 앞으로 5~6년 뒤에 해소할 것인지에 대해 가지고 답을 알고 있어야 해요. 이거 답 모르면은 폭동이 나도 솔직히 할 말 없습니다. …… 33만 명에 이르는 2000년생 남성들에게 나중에 가서 6~7년 뒤에 ‘미안하다. 어쩔 수 없다. 너희의 3분의 1은 결혼을 못할 거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지?”
   
이준석의 이 발언은 주간동아 인터뷰에 나온다. 이 발언은 여러 커뮤니티에서 동시에 이슈가 되었다. 한쪽에서는 ‘왜 혼인 연령 차이를 5살로 설정하느냐’ ‘남자가 결혼 못하면 폭동이냐’ 이런 얘기를 중심으로 비판받고, 다른 한쪽에서는 ‘민주당은 이런 거 모르겠지 역시 이준석’ 이런 분위기였다.
   
나는 정치인이 도덕보다는 정책적 성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본다. 시쳇말로 조금 “빻았더라도” 문제 소지를 명확하게 하고, 섣부른 결론을 내더라도 현실을 어느 정도 명확하게 진단하고 있다면 그것을 감안해줄만 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이준석의 진짜 문제는 문제를 제대로 파악조차도 못하고 있는 무능력함에 있다.
   
첫째, 결혼 적령 나이 차는 위아래로 약 3살 정도가 평균적으로 가장 많다. 그러니까 남성 연상 5살 차이 커플은 통계적으로 그다지 유의미하지 않다는 얘기다. 당장 주위에 결혼한 사람 생각나는 대로 10쌍만 나이 차 계산해 봐도 답 나온다. 둘째, 결혼에서 중요한 건 나이 차보다는 직업 변수, 거주지 변수가 중요하다. 2000년생 남자랑 2005년생 여자가 1대1 비율이어도 서로 직업이 안 맞고, 사는 곳이나 생활반경이 달라서 마주칠 일이 없으면 당연히 결혼할 일도 없다.
   
이준석은 한껏 ‘민주당은 모르는 문제를 우리는 2012년부터 인지했다’ 이런 메시지를 전한다. 하지만 이 역시도 딱히 쓸모 없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혼인과 출산에 관한 문제는 나름 핫한 문제라서 국책연구기관에서 연구하고 있거나, 이것을 주제로 하는 연구자가 분명 있을 거다. 이런 것까지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실력이다.

4. 이준석의 진짜 문제 3 범죄

이 문제가 아마 가장 현재적이다. 정의당 장혜영은 교제 살인 사건을 공유하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별통보 했다고 칼로 찌르고 19층에서 밀어죽이는 세상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페미니즘이 싫습니까? 그럼 여성을 죽이지 마세요. 여성의 안전 보장에 앞장서세요.”라고 적었다.
   
이에 이준석은 “선거 때가 되니까 또 슬슬 이런저런 범죄를 페미니즘과 엮는 시도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런 잣대로 고유정 사건을 바라보고 일반화 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라고 반문하는 글을 게재했다.
   
장혜영의 주장을 내가 이해하자면 이렇다. ‘데이트폭력, 교제살인 등의 사회 문제에서 피해자는 주로 여성이고, 가해자는 주로 남성이다. 이런 반복되는 사회 문제에 대한 정책적 방지책이 필요하다. 이것이 문제로 인식되었는데도 제대로 된 해결책이 없기 때문에 여성은 페미니즘, 여성의 권익을 향상하기 위한 정치적 의제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19년 살인·강도·방화·성폭력 등의 강력범죄(흉악)에 해당하는 범죄자의 95.5%는 남성이다. 이런 추세는 약 20여 년 동안 비슷하다. 강력범죄(흉악)에 해당하는 범죄자는 보통 95% 내외로 남성이다. 한편 강력범죄(흉악) 피해자의 80%는 여성이다. 이런 추세 역시 꾸준하다. 그렇다면 “과학적인” 정책자는 강력범죄(흉악)를 막기 위해서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나는 여기서 모든 남성이 잠재적 범죄자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통계를 너무나 성기게 해석해서 미안한 정도지만, 내가 정책 입안자라면 저 통계를 보고 통계적으로 가장 피해의 대상이 되는 대상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물론 단순히 성별 변수보다는 더욱 구체적인 통계를 사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준석은 이런 상황에서 고유정을 소환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린이 영양 부족 문제’를 해결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당연히 저소득층 아이를 중심으로 정책을 기획하고 입안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누군가 경제적으로 상위소득 가정에 있지만, 부모의 학대로 영양실조인 아이를 사례로 들어 저소득층 아이가 중심인 정책 기획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그게 과연 과학적인 발언일까? 물론 정책은 주류에서 벗어나는 소수의 문제도 포괄해야 한다. 하지만 주안점은 언제나 주류여야 한다. 데이트폭력, 교제살인에서 고유정을 소환하는 이준석은 여기에서도 무능하다.

5. 이준석의 진짜 문제는 “무능”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거다. 이준석은 스스로 자신을 ‘차가운 능력주의자’ ‘능력은 있지만 할 말은 하는’ 혹은 ‘버릇은 없어도 옳은 말 하는’ 정치인으로 이미지 메이킹했다. 나는 이게 일종의 트릭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건 꽤나 먹힌 듯하고. 그런데 실상 이준석의 발언을 검증해보면 이런 엉터리 같은 분석이 횡행한다. 이준석의 진짜 문제는 이준석이 버르장머리 없는 게 아니라 그냥 정치인으로서 현실 감각 자체가 부족하다는 것, 사회에 과학적으로 접근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명료하게 말하면 이준석이 정치인으로서 무능력하다는 것이다.
   
이준석은 지금껏 국민의힘의 총선 패배로 인한 궤멸 상태, 안티 페미니즘 선봉장으로서 이만큼 성장했다. 내실도 없으면서 말이다. 이준석은 언제나 ‘페미니즘’ 혹은 ‘정체성 정치’라고 부르는 것들이 내실도 없고 근거도 없고 비과학적이라고 규정해왔다. 그런데 다시 살펴보자, 그의 압도적 지지기반이 되는 2030대의 안티 페미니즘 남성들. 그들이야말로 동시대 여성의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화를 목도하며 스스로 ‘안티 페미니스트’로 정체화됐다. 이거야말로 정체성 정치가 아닐까?
   
앞서 말했듯 나는 정치인이 도덕적으로는 조금 구려도 현실적이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어린이 영양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꼭 아동운동가가 될 필요는 없다. 똑같이 데이트폭력, 교제살인이라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페미니스트가 될 필요도 없다. 통계가 말해주는 가해자와 피해자는 보통 어떤 대상인지, 이런 범죄는 주로 어떤 상황에서 발생하고, 어느 연령대에서 어떤 장소에서 발생하는지, 가해자에게 보이는 공통점은 없는지 분석하고 이런 주류적 경향이 간과하는 사례는 없을지 드라이하게 고민하고 최선으로 선택해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결국 이준석의 문제는 이런 거다. 문제를 문제 자체로 보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이야말로 모든 문제를 젠더불평등과 유리시켜 봄으로써,선입견을 가지고 진짜 문제를 놓치고 있다. 이준석의 진짜 문제는 “무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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