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화해 혹은 희망의 울림

박선욱 · 시, 동화, 소설 및 평전을 씁니다.
2023/02/13
◆ 서평 ◆
   
   
슬픔과 화해 혹은 희망의 울림
   
   
박선욱
   
   
최근 우리 시대의 어제와 오늘을 반추해 보는 데 퍽 적절한 시집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왔다. 그중에서 채호기 시집 《슬픈 게이》(문학과지성사), 임동확 시집 《벽을 문으로》(문학과지성사), 김영환 시집 《지난날의 꿈이 나를 밀어간다》(실천문학사)는 당대성을 표현하는 인식 방법이 독특하게 구현되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채호기의 시 세계는 비극적 정조로 짜여 있다. 시위가 당겨진, 그래서 활을 머금은 줄이 아픈 긴장 속에서 과녁을 향해 퉁겨질 찰나처럼, 팽팽히 숨 막힌 부릅뜬 눈이다.
‘게이’는 엄혹했던 지난날 우리들의 벌거벗은 모습이다. 그것은 ‘밤의 끝까지 쫓아갔는데도/너는 없고/삶의 극단에 있는 너/절정에 올라버린 시든 페니스처럼’ 덧없고 허망하다. 왜 그런가? ‘내 몸이/내게 맞지 않기’ 때문이다.
70년대의 극단적인 엄숙주의와 80년대의 통렬한 고통을 온몸으로 껴안아 본 사람은 안다. ‘내 몸과 네 삶이 뿌옇게 섞이고 있는 거기 그 자리/서리 낀 창의 잘 보이지 않는 저쪽처럼/삶과 삶이 섞이는 답답하고 느린/끝없이 유예되는 그 자리, 격렬하고 불투명한 그 삶’.(「그 자리, 그 삶」)이 얼마나 처절한 아름다움인가를.
채호기의 시편들은 이렇듯 80년대 이후의 변화해 가는 모든 풍경들에 의해 잘디잔 실금으로 갈라 터져가는 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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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실천문학》 으로 등단. 시집 《회색빛 베어지다》 《눈물의 깊이》 《풍찬노숙》, 인물이야기 《윤이상》 《김득신》 《백석》 《백동수》 《황병기》 《나는 윤이상이다》 《나는 강감찬이다》 등. 《윤이상 평전: 거장의 귀환》으로 제3회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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