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가 아닌 입장 생각하기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02/04

남의 입장, 남의 관점으로 생각해본다는 게 바람직한 일이라는 건 누구도 부정하지 않겠지만, 실제로는 도통 쉽지 않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사람이라는 게 당연하게도 자기 입장으로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게 기본이고,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나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조차 할 수 없게 되어 먹었으니 자꾸 노력해서 습관을 들이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잘난 척을 하는 나도 그런 습관이 들지 않은 것은 매한가지라, 올 여름에는 참으로 한심하고 실례되는 짓을 저지른 적이 있다. 슬슬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가 가입한 커뮤니티에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분의 글이 올라왔다. 이에 나는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을 방법과 자기 심리를 살펴보기에 좋은 책을 소개하는 답글을 둘이나 달고 남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뿌듯해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상당히 건조한 반응이 돌아오는 게 아닌가. 그래서 뭔가 내가 너무 나댔거나 실수한 부분이 있나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아뿔싸, 내가 소개한 기관 중 하나는 서울시 산하기관이라 서울 시민만 이용할 수 있었다. 그분이 서울 시민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그따위 소리를 했으니 멍청한 것도 정도가 있다 싶었다. 서울 한 지역에만 너무 오래 산 사람은 한국과 서울을 혼동해서 생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더니 내가 바로 그랬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남보다 더 타인의 관점을 고려할 줄 알아야 할 텐데…….

그러나 그런 실수를 저지르는 자라도 남의 잘못에는 아주 날카롭고 예민해지는 것이 또 사람의 신기한 부분인데, 나는 전후세대인 부모님과 함께 지내며 이런저런 기기를 다룰 때 마다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도 딱히 다양한 사용자를 잘 고려하는 재주나 자세가 충분치는 않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가장 최근에 나로 하여금 이를 갈게 만든 것은 셋톱박스다. 우리집은 S모 통신사의 서비스를 할인 때문에 마지못해 이용하고 있는데, 이 물건의 사용법은 정말이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특히 어떤 방송의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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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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