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엔걸 스즈코> - 생존을 위한 은둔

김다움
김다움 · 게을러요
2024/04/22
착한 품성은 약자의 생존전략이다. 약자는 '착한 내가 참아야지'라는 마음으로 견딘다. 불의에 저항하면, 혼난다. 과거 전장연 시위를 다룬 <백분토론>은 이준석이 박경석을 내려다보는 구도로 진행됐다. 이준석은 전장연 시위를 '비문명적'이라고 평했다. '선량한' 시민의 불편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일관성을 유지한다면 인권을 존중하는 시민과 선량한 장애인을 불편하게 만든 이준석의 발언도 비문명적이다. 애당초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비문명'으로 평가하긴 힘들다. 문제는 집회의 자유와 이동의 자유의 충돌이 아니고, 토론의 영역도 아니다. 비슷한 사례가 동성애 찬반 '논쟁'이다. 

스즈코는 흔하지만 특이한 인간이다. 일단, 착하지 않다. 소심해서 착해 보일 뿐이다. 소심함과 선함은 구분하기 힘들다. 나는 명백하게 소심한 사람이다. 조금이라도 맘에 안 드는 일이 생기면, 하루 종일 생각하며 저주를 퍼붓는다. '참교육' 하는 시나리오도 수십 개 그린다. 실제론 아무것도 안 하고 얌전히 지낸다. 혼자 삭힌다. 그러다 가끔 '급발진'해 관계를 망친다. 스즈코도 비슷하다. 불의가 계속되면, 폭발한다. 동네 친구에게 파를 던지고, 남자 친구를 '팩폭' 한다. 그러니 <백만엔걸 스즈코>를 착한 여성이 나쁜 세상과 남성을 겪는 과정으로 읽는다면, 다소 평면적이다.

더러운 관계에서 약자는 참는다. 문제를 피할 지혜로운 방법이지만, 죽기 전까지 참아야 한다. 다른 방법은 자기 계발을 통한 승부다. 아쉽지만 '정당 방위'는 인정받기도 힘들고, 불공정 경쟁을 이기는 차력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판을 뒤엎는 싸움은 어떨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대안은 스즈코다. 스즈코는 도망 다닌다. 백만 엔을 벌고, 이사 가고, 다시 백만 엔을 벌고, 다시 이사 간다. 연락은 끊고, 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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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언론을 전공하는데, 그다지 전문적이진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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