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책을낳고②> 안개 고동과 바닷속 괴수와 페이스북

정숭호
정숭호 인증된 계정 · 젊어서는 기자, 지금은 퇴직 기자
2023/10/16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다가 미국 공상과학소설(SF)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1920~2010)의 단편 ‘안개 고동(The fog horn)’을 생각했다. 인가와 멀리 떨어진 황량한 바닷가 바위 꼭대기에 서 있는 외딴 등대를 바다 저 깊은 곳에서 떠오른, 크기를 짐작할 수 없는 거대한 괴수(怪獸)가 덮쳐 부수어버린다는 내용이다. 
   
괴수가 덮치지만 공포물은 아니다.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다. 깊은 바다, 그 아득한 심연에 백만 년 이상 묻혀 있던 비애가, 브래드버리의 필명을 떨쳐준 섬세하고 아름다운 서정적 문장을 타고 번져나가는 소설이다.
레이 브래드버리 초상. Google Inmage, creative common liscence. creator:James Vaughan
 
괴수의 정체는 모른다. 지표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인 공룡의 마지막 남은 후손으로 짐작된다. 연중 해무(海霧)가 가장 심한 11월의 밤, 등대에서는 안개 고동이 울린다. 캄캄한 바다 위 홀로 있는 배들을 안내하기 위한 붉은색, 하얀색, 붉은색 불빛이 안개에 막혀 배에 닿지 못할 경우 15초에 한 번씩 안개 고동 소리로 위험이 가까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낮고 우렁찬 그 고동소리는 “모든 시간과 존재하던 모든 안개와 같은” 소리다. “밤새 텅 비어 있는 침대 옆자리” 같고, “문을 열었을 때 텅 비어 있는 집과 같은 목소리”다. “가을이 되어 이파리가 전부 떨어져 버린 나무” 같고 “11월의 바람과 차가운 돌투성이 해안에 와서 부딪히는 바다 같은 목소리”다. 
   
괴수는 “너무 외로워서 그 누구도 지나치지 못할 목소리, 듣는 모두가 영혼으로 울게 할 목소리,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은 영겁의 슬픔과 삶의 덧없음을 깨닫게 되는 ...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하드리아누스 …, 스미스, 미제스, 하이에크, 자유, 시장경제, 나보코프, 카잔자키스, 카뮈, 쿤데라, 마르케스, 보르헤스, 무질, 브라이슨, 마그리스, 미당, 서정인, 김원우, 안동, 낙동강, 빈, 에든버러, 다뉴브, 겨울 지중해, 석양의 수니언 베이, 비 젖은 오랑
50
팔로워 67
팔로잉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