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지옥에 있는 이유

적적(笛跡)
적적(笛跡) · 피리흔적
2024/08/11
최소한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며 최소의 화력으로 음식을 데우고 최소한의 기억과 최대의 감사함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죠. 가령 가장 많이 힘을 기울였던 건 책장을 넘기는 정도 펼쳐진 책이 한쪽으로 기울여지지 않도록 엄지손가락을 나머지 네손가락의 힘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는 일로 에어컨은 정오가 지나고 난 뒤 한 시간 정도 전원을 켜두는 일.
 
엄마는 아직도 에어컨을 켜는 것보다 선풍기를 켜는 일이 더 익숙하신지도 모릅니다. 그런 줄 알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격주로 아들 집에 오시는 엄마는 여동생을 앞세우고 지난밤 얼려두신 음식들과 밑반찬을 가지고 오십니다. 기나긴 환승역을 지나 전철을 타고 이 더운 여름날을 헤치고 오셨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은 엄마가 오시기 전 두 시간 전부터 집안의 문을 모두 열고 거실 바닥을 쓸어 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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