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유감
1979년 12월12일에 30단에 모인 장교들이 모두 전두환 뒤에서 줄서서 승진하려고 모였을까요? 그들이 악의 화신이라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 악에게 짓눌려서 그냥 신음하던 국민들이었을까요? 과연 정승화와 장태완은 나라를 생각한 군인이고, 전두환 노태우는 나라를 말아먹을 생각만 한 군인들이었을까요? 정말로 그런 절대악에 우리 국민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한 것일까요?
전두환은 힘을 바탕으로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이 됐다고 해도, 노태우가 직선으로 대통령이 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요? 김대중과 김영삼이 단일화를 못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하지만, 사실 당시 비공개 여론조사 결과는 단일화를 해도 노태우가 뽑히리라는 것이었습니다.
10 26 이후, 학생들은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당시 대학가에는 처단해야 할 5인으로 전두환 노태우 신현확 등이 대자보로 나붙었습니다.(나머지 둘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이 중에 신현확은 강단있는 사람으로, 최규하 대통령 밑에서 국무총리로 있었는데 사람들은 신현확이 대통령이었다면 12 12는 없었을 것이라고들 합니다. 그런 사람까지 엮어서 몰아내려고 한 배후에는 당시 집권욕에 불타던 김대중 김영삼 등의 정치인들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저는 의심스럽습니다. “대통령 유고라는 혼란의 시점에 대학생들에게 질서를 호소한 정치인이 하나라도 있었다면”이라고 당시 군출신 중 누군가가 말했었습니다.
역사를 말하자면, 신군부가 권력을 탈취한 것이 아니라 권력이 신군부에게 갔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라고 저는 봅니다. 대통령 유고라는 상황에서 정치권은 지리멸렬했고, 나라의 질서는 서지 않고 어지러웠으며 대통령 권한대행은 무능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이를 걱정했고,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시해범을 수사하는 합수부장에게 권력이 모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당시 합수부는 정승화를 의심했고, 의심할 이유도 충분했습니다.
10.26 당시, 요란한 총성이 들린 후 정승화는 김재규의 안가에서 피 묻은 와이셔츠 차림의 김재규를 보았습니다. 김재규는 구두를 신을 겨를도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