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 어느 성폭력 생존자의 빛나는 치유 일기 by 은수연, 김영서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08/28

두 여자가 있다. E는 자상하고 신앙심 깊은 목사 아버지와 가정주부 어머니 사이에서 3남 1녀로 태어났다. 학창 시절에는 학원 한 번 다니지 않고도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고, 성격도 크게 모난 곳이 없어서 교우 관계도 원만했다. E는 초, 중, 고 정규 교육과정을 모두 마친 후 4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학사 학위를 받은 후에는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사회복지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고, 현재는 작가와 강사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반면에 E와 동갑내기인 K의 삶은 파란만장하다. K는 12살 때부터 9년 동안 친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했고, 초경통이 시작된 초등학교 6학년 때 원치 않은 임신으로 인한 낙태를 했다. 다른 가족들은 아버지가 K에게 저지른 흉악 범죄를 알면서도 묵인했다. (때때로 어머니는 딸인 K에게 "아빠랑 붙어먹은 년."이라며 욕을 퍼부었다.) 가까스로 집을 탈출한 후에도 지독한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짓눌리는 고통을 견디지 못한 K는 수차례 자살 시도를 했다.

E와 K의 성장과정을 들은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마도 E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외동딸로 가족들에게 사랑받고 자란 여자아이의 이미지를 떠올렸을 것이고, K는 박복한 팔자를 타고난 불쌍한 아이 혹은 뉴스에서 볼 법 하지만 내 주변에는 없는 여자아이라고 단정 지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겠다. 사실 나는 당신에게 거짓말을 했다. E와 K는 동일 인물이다. 이 불편한 진실을 당신은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그러니까, 멀리서 보면 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집안의 희생양이 되어 강간 피해를 침묵당해야 했던 한 사람의 인생을 속단하지 않을 자신이 있냐고 묻는 것이다. 미디어가 창조한 '여성 불행 포르노'에 익숙하고, 강간을 당하면 제정신으로 살 수 없다고 믿는 사회에서 친족 성폭력 피해자의 이야기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거나 온갖 자극적인 키워드로 함축된다. 그렇기에 나와 당신은 모든 판단을 유보하고 그저 들어야 한다. 타인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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