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재난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피어스페이스
피어스페이스 · 미워하기보다 함께 살 궁리를 해봅니다
2023/03/19
3월.
새출발을 상징하는 때이며
점차 푸르러지는 나무들과 봄꽃의 향연이 이어지는 때이자
또한,
잊혀지지 않는 재난이 발생한 때이기도 하다.

2011년 3월 11일.
도호쿠 지방에 일본 근대지진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인 리히터 규모 9.0의 대지진 발생, 이후 최대 높이 40미터가 넘는 초대형 쓰나미가 덮쳤다.
2만명이 넘는 사망자와 실종자를 내고, 
50만명에 가까운 이들이 피난해야했으며
지금도 3만명의 사람들이 피난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2011년 3월 11일, 미야기현을 덮치는 쓰나미 (출처:연합뉴스)
12년이 흐른 현재,
다른 날과 다름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던 이들에게 닥쳐온 이 재난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희생자 발생에 대한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지고 있을까.
그 사이 발생한 한국의 사회적 재난 대응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런 물음들 속에
동일본대지진 당시 최다 피해자가 발생한 학교,
학교 관리 하에 전무후무한 최다 희생을 낸 사고로 기록된 곳,
재난 발생에 대한 국가의 책임 소지를 밝히고자 오랜 세월 유족들이 싸워 온 현장인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 오가와초등학교터에 다녀왔다.
유족의 뜻에 따라 초등학교 터는 그대로 남아있고, 잊지 않기 위해 그 옆에 전승관을 지었다(사진:피어스페이스)

1. <재난발생개요> 3시 37분, 멈춰버린 시간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대지진 발생.
교사들은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모이도록 지시했다.
이들은 학교측의 지시에 따라, 운동장에 가만히 있었다.

교사들은 어디로 대피해야할 지 정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했다.
오후 3시 30분이 넘어서야 인근 삼각지대로 대피하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도보로 움직였으나, 이미 너무 늦었다.
3시 37분, 쓰나미가 그들을 삼켜버린 것이다.
오가와 초등학교 3학년 교실에 걸려있던 시계....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일본에서 노동하고 활동하고 노는 소셜워커. 지역과 돌봄과 사람에 대해 씁니다.
9
팔로워 18
팔로잉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