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마을 만들기> : 동피랑 벽화마을에서 시작된 작은 기적 by 윤미랑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08/24

재개발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한 대표 사업이 '벽화 그리기'다. 주걱칼로 해어진 벽을 긁어내고 흰색 페인트로 정돈한 뒤 그림을 그려 넣으면 단정한 모양새로 제법 이목을 끈다. 이렇게 공공미술과 도시 재생 사업의 성공적인 콜라보레이션으로 마무리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압도적으로 많다.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합심하여 동네를 부흥시키면, 어김없이 수도권 투자자들이 몰려와 땅을 매입한다. 가난한 마을에 중산층 이상의 계급과 막대한 자본이 유입되면서 임대료와 월세가 오르고, 이를 감당하지 못한 원주민들은 삶터 밖으로 내몰린다.

관광객들의 무개념 행동도 동네를 쇠퇴시키는 원흉이다. 서울 대학로 부근의 '이화 벽화마을'은 드라마 <옥탑방 왕세자>와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 촬영지로 유명세를 떨치며 관광 명소로 급부상했다. 좁은 골목길 사이로 이어지는 벽화를 조용히 감상하고 풍경만 담아 가면 될 일인데, 대다수가 선 넘는 행동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들은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렸고, 시끄럽게 떠들었으며,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동의 없이 사생활을 노출시켰다. 마을의 역사와 문화라는 볼거리는 제쳐두고 빈곤 포르노를 즐기느라 정신이 팔린 것이다. 결국 참다못한 일부 주민들은 이화 마을의 상징이었던 잉어와 꽃을 훼손했다.

마을 공동체를 둘러싼 주민, 행정, 자본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쌔가 빠지는' 노력과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 마을 활동가 윤미숙 님의 <춤추는 마을 만들기>는 구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 과정을 현장의 언어로 풀어낸 책이다. 장장 9년 동안 '푸른 통영 21' 단체에서 활동한 저자는 우연한 계기로 마을 만들기 사업에 착수하게 된다. 2006년 가을, 통영에 지방의제 추진 기구가 생기고 사무국 책임을 맡은 때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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