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건국전쟁 그리고 대안역사

곽경훈
곽경훈 인증된 계정 · 작가 겸 의사
2024/02/17

1.
노인은 쉰여덟에 장군으로 진급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대령으로 퇴역할 상황이라 '가까스로'란 표현이 어울렸다. 사관학교를 졸업했고 산악부대에서 복무했으며 육군대학 교수를 지낸 경력에 어울리지 않는 느린 진급이었으나 능력은 부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능력이 너무 우수한 것이 문제였다. 

노인이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활동하기 시작한 1870-1880년대는 프랑스에게 매우 암울한 시기였다. 보불전쟁(1870-1871)에서 패배하여 알자스-로렌지역을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자존심에 치명타를 입었다. 사실 나폴레옹 1세를 제외하면 역사적으로 프랑스의 군사적 영광은 보잘것없었다. 태양왕 루이 14세조차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여 전쟁에서 겨우 승리했을 뿐, 전투에서는 별다른 영광을 얻지 못했다. 백년전쟁도 영국군이 백년 동안 프랑스를 약탈하고 철수한 것에 가깝다. 그러다보니 보불전쟁 후부터 1차대전 전까지 프랑스 육군 수뇌부는 '열등의식을 감추려 극단적인 태도를 보이는 찐따'처럼 행동했다. 그래서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무조건 공격'이 프랑스 육군의 전투지침이었다. 

그런데 노인은 거기에 반대했다. 노인은 '잘 조직된 방어가 우선이며 우세한 화력을 확보한 상황에서만 공격한다'고 주장했다. 합리적인 주장이었으나 그덕분에 육군 수뇌부는 노인을 싫어했다.1차대전이 발발하지 않았다면 노인은 대령으로 경력을 마무리했을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1차대전이 발발하자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무조건 공격'이란 전투지침은 재앙으로 드러났다. 철조망, 기관총, 중포가 보편화한 전장에서 보병의 '묻지마 돌격'은 대규모 자살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면서 노인에게 기회가 왔다. 전쟁의 시작과 함께 준장으로 진급했고 '조직화된 방어를 우선하고 우세한 화력을 확보한 다음 공격'이란 전술을 통해 우수한 전과를 올렸다. 1916년에는 독일군이 정예병력을 동원하여 베르뎅에서 펼친 공세를 극적으로 막아내며 영웅으로 떠올랐다. 특히 노인은 다른 장군과 달리 병사와 부사관이 최전선에서 겪는 고통을 이해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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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권의 메디컬에세이를 쓴 작가 겸 의사입니다. 쓸데없이 딴지걸고 독설을 퍼붓는 취미가 있습니다. <응급실의 소크라테스>,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반항하는 의사들>, <날마다 응급실>, <의사 노빈손과 위기일발 응급의료센터>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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