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비>에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

홍수정 영화평론가
홍수정 영화평론가 인증된 계정 · 내 맘대로 쓸거야. 영화글.
2023/08/09
※PD저널에 기고한 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바비> 스틸컷
그레타 거윅은 지금 할리우드에서 '여성 서사'를 잘 쓰는 대표적인 감독 중 하나다. 하지만 무겁지 않고 경쾌하다. 재기발랄하고 풋풋하지만, 진지함을 버리지 않는다. 사실 여성보다는 소녀의 이야기에 가깝다 할 것이다. 소설 원작의 <작은 아씨들>(2020), 소녀의 성장기를 다룬 <레이디 버드>(2018)까지. 아직 덜자란 여성이 좌충우돌하는 사랑스러운 세계를 그녀는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랬던 그녀가 신작 <바비>를 들고 왔다. 제목부터 의외다. 그레타 거윅은 완벽한 미를 표상해 온 '바비 인형'보다는 어딜 보아도 완벽하지 않은 여자들의 이야기를 해 왔으므로. 

좋아하지 않은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작가의 내심이 무엇일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풍자. 한번 제대로 신명 나게 비꼬아 보겠다는 것이다. <바비>도 그 길을 간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전시하는 여성, 우월주의에 빠진 남성을 조준해 비튼다. 여태 짓궂은 유머를 가끔 선보였지만 가벼운 농담의 수준에 머물렀던 그레타 거윅에게 풍자는 하나의 도전이었으리라 짐작한다. 

<바비>가 제대로 풍자하는 대상은 '가부장제'다. 영화에서는 '가부장제'로 번역되지만 남성우월주의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영화는 자신과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연대할 수 있는 존재를 찾고 점차 성장하는 바비(마고 로비)와, 우월주의에 빠져 마을을 망가뜨리는 켄(라이언 고슬링)을 비교해 보여준다.

특히 바비 월드를 망가뜨리는 가부장제, 그것을 퍼뜨리는 켄에 대한 영화의 비꼬기는 가차 없다. 비록 적당히 귀엽게 연출되지만, 잠시나마 우위를 점했던 켄에게 영화는 마지막까지 애정을 주지 않는다. 대법관이 되고 싶다는 켄의 말에 "너희는 좀 낮은 직종만 할 수 있다"라고 답한 대법관 바비의 대답도 이런 태도를 보여준다. '켄'들은 바비의 주변부에 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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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한 영화잡지사에서 영화평론가로 등단. 영화, 시리즈, 유튜브. 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씁니다. INF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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