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춰뒀던 오지랖을 꺼내야 할 때

홍지현 · 생각 많은 관찰자로 핀란드에 삽니다.
2022/12/28
쓸데없는 오지랖은 사양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만 오지랖을...
눈 내린 헬싱키 중심가, 출처: Unsplash


술 취해서 눈길에 다리 뻗고 앉아있던 노인

지난주 월요일 (12월 28일),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장도 보려고 집을 나섰다. 트램 정류장에 펼쳐진 풍경에 가던 길을 되돌아왔다. 여성 노인이 눈으로 덮인 바닥에 철퍼덕 두발을 다 뻗고 주저앉아 있었다. 근처엔 두 명의 여인이 서로 거리를 유지한 채 바닥에 있는 노인을 불만 어린 눈빛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눈이 녹았다가 다시 얼은 데다 눈이 또 내려 길이 좀 미끄러웠다. 미끄럼 방지를 위해 여기저기 아주 작은 돌들이 뿌려져 있었지만, 그래도 운이 없으면 미끄러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혹시나 도움이 필요할까 싶어 노인을 주시하던 여인 한 명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분 혹시 미끄러지셨나요?'
'아니요. 술에 취했어요.'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괜찮아요. 경찰을 불러서 기다리는 중이에요.'
'상황을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물어봐줘서 고마워요.'

노인을 주시하던 여인과의 대화 덕분에 발걸음 가볍게 가던 길을 계속 갈 수 있었다. 추운 날씨에 밖에 오래 있고 싶지 않은 마음에 종종거리며 볼일을 보느라 바닥에 주저앉은 노인은 쉽게 잊었다. 그런데 그날 밤 문득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노인에게서 거리를 둔 채 노인을 쳐다보던 두 여인이 눈빛이 떠올랐다. 두 여인 모두 술에 취한 노인을 매우 못마땅하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노인의 쇼핑백에서 나온 식료품 몇 개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지만, 쇼핑백을 정리해주거나 노인을 일으켜 세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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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새김, 지난 일을 되돌아봅니다: 주로 핀란드 관련된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잠시 지난 이야기를 되새겨보며 숨 고르기 합니다. 제 얼룩소의 글들은 제 브런치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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