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맛보는 음식 기행5] 완당을 풀어 마시는 시간
2024/06/02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민왕기 시인은 지금 부산에 내려가 살고 있다고 한다. 거처를 왜 저 멀리 부산까지 옮겼는지 내가 알 길은 없다. 삶의 거처야 인생이 흘러가는 방향에 따라 정해지는 법이니, 몸 붙여 살아갈 곳이 꼭 고향 땅이어야 할 당위는 없으리라. 어디에 가 있든 눈에 보이는 풍광이 있을 것이고, 만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니, 그런 만남을 통해 자신의 삶을 벼려가며 쓰고자 하는 시를 쓰면 그뿐 아니겠는가.
여름엔 완당을 풀어 마신다
민왕기
완당을 좋아한다 우리가 사랑한 은어같이 흰 것을
오후에는 연한 밀을 연한 물에 풀어 마시고
밀의 조금과 물의 조금을 얻어본다
완당집, 물기가 좋아 밀이 흐늘거리고 밀의 밀이 구름을 닮아간다
중국에서 온 이 음식은 떨리는 밀의 말
당신과 마주앉아 부드러운 밀의 혀를 녹여 마시며
혀로 핥을 수 없는 안까지 줄 수 있다
흐린 날엔 광안리 18번 완당집에서 만나 눈을 보면서
서로 안을 마신다
우리가 오래도록 주고받은 밀어같이 흔들리는 것을
눈가에 어리도록 천천히 완당은 풀어지고
당신이 소문 없이...
시인으로 등단하여 <귀를 접다> 등 몇 권의 시집을 냈으며, 에세이와 르포를 비롯해 다양한 영역의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면서 국어사전을 볼 때마다 너무 많은 오류를 발견해서 그런 문제점을 비판한 책을 여러 권 썼다. 영화와 문학의 관계에 대한 관심도 많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