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상담 일지 02 - 최악의 접수상담

자기오프너 · 마라톤하는 상담심리사 & 글쓰는 사람
2023/03/13
젠장, 어떻게 엄마 목소리가 상담실에서 들릴 수 있는 거지? 도저히 내 머리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는 건, 당연히 아빠라는 사람도 내가 이곳에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다시 그 순간을 떠올려도 눈물이 핑 돌고, 갑자기 오줌이 마려운 느낌이다. 그만큼 무서웠다. 
   
조금 있으니 내 방문을 노크하고 교수가 문을 열었고, 그녀의(그년이라고 쓰고 싶다) 등 뒤로 엄마가 보였다. 아 저 병색이 완연한 엄마는 뭐하러 여기까지 온 걸까? 도대체 누구의 앞잡이로 이곳에 들어섰을까? 쪽팔리지 않았나? 본인이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딸이 9년 동안 성폭력을 자기 남편에게 당하며 살게 했다는 사실이 정말 쪽팔려 죽을 일인데......어떻게 여기까지 와서 당당히 엄마입네 하고, 나를 데려가려고 이곳에 들어설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 교수라는 사람은 그것도 미국씩이나 가서 상담을 공부하고 와서 대학에서 교수씩이나 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식으로 친족성폭력 피해자의 접수상담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탈출의 결말에 이르러 나는 눈물도 흘리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저 너무 어이가 없는 상황을 맞딱뜨리면 사람은 화도 안 나고, 눈물도 안 나고, 멍해진다. 
   
엄마와 나를 책상 맞은 편에 앉혀두고 그 상담학 교수라는 여자는 지껄였다. 
"부모님께서 너를 외할머니댁으로 보내주신다고 했다니 그곳에서 지내면 될 것 같다"
뭐 이런 결말이었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미친년아, 그게 정말 잘 지켜질 것 같냐? 그게 정말 안전한 해결책 같냐? 저년 말을 믿은 내가 바보였지, 아......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단 말인가?'
너무 밉고, 싫고, 화났고, 한편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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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오프너(self-opener) 나와 다른 이들의 자기를 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상담사가 되고 싶습니다. 여성운동, 사회복지, 글쓰기를 거쳐 지금은 서촌에 있는 상담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친족성폭력 공소시효폐지를 위한 모임 공폐단단 활동가. bodra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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