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오프너 · 마라톤하는 상담심리사 & 글쓰는 사람
2023/04/05
학교를 가는 건 괴롭기 그지 없었다. 지난 9년간 나 혼자만 알고 있던 피해 사실을 뻔히 알고 있는 상담교수마저 침묵하고, 나를 피해상황에서 살아가게 하는 현실. 그 속에서 느껴지는 수치심과 분노, 증오심을 어찌 표현해야할지 몰랐다. 나는 그저 필수과목이라 듣는 그녀의 수업 시간에 맨 앞자리에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신문이나 잡지를 화~알짝 펴놓고 보는 행위로 달랠 수밖에. 분노심에 손발이 떨리고, 입술이 파르르 떨리기도 했다. 내 사정을 모르는 친구들은 그녀의 책읽기 수업에 대한 단순한 저항으로 생각하고, '멋지다'고 했다. 내가 그때 그녀가 저지른 비윤리적 행위를 까발렸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나는 당시 사회적 편견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성폭력을 당한 사람이 느끼는 무거운 수치심, 아빠라는 사람의 잘못을 까발린 죄책감'으로 버겁기만 했고, 말해봐야 나만 더 이상해질 것 같아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런 나의 취약성을 알고 있어 그녀는 그렇게 뻔뻔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4학년 2학기에 수업도 다 듣고, 과제도 다 제출하고, 시험도 다 잘 본 수업에 D를 주었다. 신문보고 잡지 봐서 점수를 그지같이 준 것 같은데 "야, 너가 한 짓 까발렸으면 너는 교수도 뭣도 못했어, 지금 시절이면" 이라고 소리쳐주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녀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가해자로부터 탈출한 이후에도 그녀에게는 말하지 않았고, 그녀를 저주하고 저주했다. '미친 년 너는 니네 아빠한테 당하면 즐길 수 있나봐? 나는 아닌데' 이렇게 혼자 씩씩거릴 뿐이었다.

집을 나와 광화문의 한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그곳에서 대학부 예배를 드리고, 친구들과 자취를 함께 했다. 차차 몸도 마음도 안정을 찾아가던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대학의 대학원을 다니고 계시던 대학부 전도사님과 같이 버스를 타고 교회로 향하던 길이었다. 그날 따라 수업을 ...
자기오프너 님이 만드는
차별화된 콘텐츠,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자기오프너(self-opener) 나와 다른 이들의 자기를 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상담사가 되고 싶습니다. 여성운동, 사회복지, 글쓰기를 거쳐 지금은 서촌에 있는 상담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친족성폭력 공소시효폐지를 위한 모임 공폐단단 활동가. bodraoon@naver.com
69
팔로워 43
팔로잉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