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노래를 들어라

적적(笛跡)
적적(笛跡) · 피리흔적
2024/05/14
한없이 어떤 일에서 멀어질 때가 있지 않나요? 어떤 장소 가령 집안에서의 나는 늘 나른하고 이제 어항 밖으로 튕겨져 나와 속절없이 몸을 바닥에서 파닥거리다 그마저도 힘 없이 멈추고 그대로 비늘이 말라가고 아가미를 점점 더 느리게 젖혀가며 그 붉은 속살에서 공기를 찾아내는 일을 반복하곤 합니다. 
   
가령, 회사 사무실에 가면 집안의 나와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통화를 하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다시 자판을 두드리고 성실까진 아니더라도 제법 활기차고 부지런한 직장인이 되는 것처럼 말이죠.
   
오월의 아침이 아직도 서늘하기만 합니다. 며칠째 가로수 아래 놓여있는 트렁크 두 개를 발견하였습니다. 외진 길가엔 사람들이 모두 떠나간 흔적 뿐입니다. 돌아올 사람들도 눈길 한번 주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길을 걷지 않아도 되는 가방을, 수화물 칸에 실리지 않아도 되는 가방을, 이제 누구도 그 안을 열어볼 생각도 하지 않을 가방을, 그리고 재활용 쓰레기 스티커도 붙어있지 않은 가방을, 이제 여행을 더 이상 떠나지 않아도 되는 가방을.
   
by적적

햇살이 이제 막 어항에서 튕겨져 나온 노란 빛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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