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칼럼계의 아이돌,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님의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을 읽고 한때 그 분의 글에 빠져 살았다. 그 분이 "추석이란 무엇인가?"로 유명해지기 전 그 분의 수업을 학부생 시절 한 번 듣기도 했다. 김영민 교수님의 톡톡 튀는 수업 스타일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솔직히 결코 쉬운 수업은 아니었다. 학부 4년 동안 들은 전공수업 중 가장 빡센 수업이었다. 하지만 전혀 관련되어 있지 않은 두 가지 요소들을 독특하게 연결지어 정치사상적 맥락에서 해석하는 그 분의 모습에서 많은 지적 자극을 느꼈다. '지식을 가지고 논다.'는 개념이 있다면 어쩌면 저런 것이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무튼 김영민 교수님의 칼럼집이나 에세이집을 챙겨 읽던 시절이 있었는데, 에세이집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역시 내돈내산(내 돈으로 내가 산)한 책 중 하나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지금은 그 책의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대략적으로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지금 다시 그 책을 읽고 싶긴 한데, 돈 없던 로스쿨생 시절 알라딘 중고서점에 그 책을 팔아버려서 아쉽기만 하다. 그러나 그 책의 내용이 은연중에 나의 죽음에 대한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하다. <아침에는~> 이후에 출간된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역시 나의 생사에 대한 관점에 큰 영향을 주었다.
평소에는 죽음에 대해 생각할 일이 그리 많지 않다. 가까운 사람이 죽을 때 비로소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사실, 굳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주제이긴 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는데도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하며 사는 사람이 많다. 그나마 종교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 종교의 교리에 따른 생사관(觀)이 있으니 죽음 앞에서도 조금이나마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테다. 그러나 신앙이 딱히 없는 사람이라면, '내가 죽으면 내 존재가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지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면 문득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죽음의 공포 속에 눈 앞이 아찔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