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남자를 없애는 방법: <나비효과>와 <유전>
2023/06/10
아리 에스터의 영화에선 남자들이 불타 죽는다. 화려한 데뷔작 <유전>에서도 그랬고, <미드소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지 어떤 이들은 아리 에스터를 정상 가족과 남성성에 대해 적개심을 가진 인물로 읽어내는 듯하다. 그런데 아리 에스터는 정말 남성을 싫어하는 것일까? 우선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살펴보자. <유전>과 <미드소마>에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고 극도로 예민해 주변을 파괴하는 전형적인 공포물 속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두 영화 모두 이해할 수 없고 기괴한 행위를 하는 주체는 거의 여성이다. 반면 남성들은 이러한 여성과 친밀한 관계로서 그들을 이해하는 데 지친 모습을 보여준다. 그 결과로 그들은 결국 불타 죽는 결말을 맞지만, 그때 관객이 느끼는 감정은 피해자로서의 남성에 대한 연민이다. 이런 묘사는 <유전>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감독이 그려내고 관객이 읽어내는 등장인물 캐릭터 중 유일하게 ‘정상’이고 호감이 가는 자는 주인공과 모계 혈통을 공유하지 않는 남편뿐이다. 그리고 <유전> 속 가족은 모두가 비극적 결말을 맞는데, 적지 않은 관객이 ‘이상한 집안사람과 결혼해 인생을 망친 멀쩡한 남편이 제일 불쌍하다.’는 평을 남기는 것이 인상 깊다. 엄밀히 따지자면 그는 유일하게 그 사태의 일원이 되는 길을 ‘선택’할 수 있었던 사람이고 다른 인물들은 본인의 의도와 무관한 ‘유전’의 희생양이 된 셈인데도. 또한 아리 에스터의 영화에서 남성들 역시 불에 타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죽지만, 감독은 잔혹한 죽음의 참상을 오래도록 적나라하게 비추는 대상으로 여성 인물들을 고른다. <유전>에서 가장 수위가 높은 폭력을 보여주는 장면은 여성 아동의 머리가 잘리고 거기 파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