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오후>

천세진
천세진 인증된 계정 · 문화비평가, 시인
2023/08/16
출처-픽사베이
<어느 오후> - 천세진
   
바람이 빨랫줄에 널린 빨래들을 들추자, 마른 시간이 한 움큼 부스스 흩어져 풀밭으로 달아나던 오후였다
   
​햇살 아래서 연자방아에 매인 황소가 보리 낟알의 시간을 끌고 또 끌다가 제대로 뿔이 났고, 그림자에 황갈색이라도 입히려는 듯 말뚝처럼 버티고 있던 오후였다
   
​ 석양이 달려와 달래지 않았다면 연자방아가 ‘쩍’ 소리를 내며 뿔난 황소 앞에 무릎을 꿇었을지 모르는 오후였다
   
​잠자리들이 바람을 한 잔 두 잔 마시다 낮술에 취해 옥수수 끝을 겨우 붙잡고 휘청대던 오후였다
   
​대낮부터 술이냐고 말매미가 시끄럽게 잔소리를 해댔고, 잠자리들이 술기운에 온몸이 고추처럼 빨갛게 달...
천세진
천세진 님이 만드는
차별화된 콘텐츠,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시집 <순간의 젤리>(2017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풍경도둑>(2020 아르코 문학나눔도서 선정), 장편소설<이야기꾼 미로>, 문화비평서<어제를 표절했다-스타일 탄생의 비밀>, 광주가톨릭평화방송 <천세진 시인의 인문학 산책>, 일간지 칼럼 필진(2006∼현재)
119
팔로워 349
팔로잉 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