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페미니즘 교실] 손가락 골절과 페미니즘 체육 수업의 관계
2023/02/22
지금, 페미니즘 교실 연재 목록
들어가며 - 지금, 페미니즘 교실, 김동진
1화 -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믿는 당신에게, 오혜민
2화 - “어떻게(HOW)?”에 대답하는 과정, 조은
3화 - 음악 수업을 통해 들여다보는 '나'와 '세상', 레일라
4화 - 표현을 제한하기? 웃음을 확장하기!, 김은지
겨울방학의 끝자락. 나는 왼손 가운데 손가락 첫 마디 관절의 뼈 일부가 떨어져 나간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있다. 정형외과 의사는 골절이라 말했다. 나는 초등교사이고 아직 학생 생활 기록부 마감을 마치지 못한 상태이며 우리반 6학년 학생들의 졸업식은 3주 후인데 손가락 골절이라니. 무심하게 흘러가는 겨울방학을 아쉬워하다 개학 준비를 해볼까 하며 나선 결과가 전치 8주의 손가락 부상이라니, 야속하기만 했다.
사건의 발단은 여성 체육 교사 모임에서 주최한 연수(교사 대상 교육)였다. 체육 수업만큼은 열정 넘치는 우리반 학생들의 마지막 초등 체육 시간을 어떻게 장식할까 고민하다가 '추크볼'이라는 뉴스포츠(교육 등 다양한 필요에 의해 새롭게 고안된 종목) 연수를 신청했다. 비 내리던 주말, 서울 동쪽 끝인 우리 집에서 연수 장소인 구로구의 한 고등학교까지 가는 데는 1시간 반이 걸렸다. 차가 가득한 도로에서 몇번이나 한숨이 나왔다. 결국 지각이다.
'추크볼'의 게임 방법과 중등 교육 사례 설명을 마친 후 실습이 시작되었다. 준비 운동 후 2인 패스 연습을 했다. 노란 추크볼 공을 던지는 폼이 어딘가 예사롭지 않은 멋쟁이 중등 체육 여성 교원들 틈에서 교육대학교 출신의 비전공자인 나는 다소 위축되었으나 공을 정확히 던지고 받기 위해 나름 애쓰고 있었다. 상대가 던진 공이 예상보다 빠르게 날아오는 것 같다고 생각한 찰나 단단한 추크볼 공은 이미 내 왼손 가운데 손가락을 스치고 있었고, 머지 않아 손가락이 부어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 느낀 '쎄함'이 있었지만 구기 운동 중 흔히 발생하는 염좌일 거라고 판단한 나는 미련하게도 몸을 사려 가며 끝까지 연수를 마쳤다.
주말이 지나고 병원에 방문했다. 골절이라 진단한 의사는 내게 수술을 권했다. 아주 운이 좋으면 깁스만으로도 뼈가 붙겠지만 깨어진 조각을 뼈에 고정하는 심을 박는 수술을 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했다. 수술을 하지 않는다면 손가락 모양이 굽거나 변형될 것이며 기능 상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수술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였다.
운 좋게도 나는 지금까지 수술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수술대에 올라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공포스러웠다.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데도 굳이 간호사가 미는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향하던 순간, 의학 드라마에서나 보던 수술실의 무영등을 올려다 보던 순간, 의사가 왼쪽 쇄골 근처에 마취 주사를 놓자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펄쩍 하던 왼팔의 감각을 느끼던 순간, 낡은 병실에서 맛없는 병원밥을 입 안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던 순간, 무려 260만원에 달하는 수술비 청구 내역에 깜짝 놀랐다가 실비 보험을 떠올리고 가슴을 쓸어 내리던 순간, 나는 처음으로 페미니즘을 원망했다.
"이게 다 페미니즘 때문이다! 페미니즘이 이렇게 무서운 겁니다, 여러분!"
"이게 다 페미니즘 때문이다! 페미니즘이 이렇게 무서운 겁니다,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