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로 끝난 프리고진의 반란

이영록
이영록 · Dilettante in life
2023/06/28
  예브게니 프리고진(Yevgeny Prigozhin)은 이력이 굉장히 특이합니다(link).

  한국 시간으로 6월 23일 일으킨 무장 봉기에서, 24일 모스크바 중심부에서 160km까지 도달했죠. 그런데 벨로루시의 독재자 루카셴코의 중재로 본인은 벨로루시로 가고 인솔한 바그너 그룹의 병사들에게는 죄를 묻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더 이상 종군은 시키지 않고 해산되긴 하지만요. (아래는 모스크바에 거의 가장 근접한 지점. 실제는 이것보다 더 접근)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만, 더 남쪽의 Lipetsk 주(oblast)에 있을 때 바그너 그룹은 "이 주에 주둔했던 러시아 정규군 대부분이 우리와 합류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적어도 모스크바를 향하는 동안 이들의 경로를 차단할 만한 군사력이 없었거나, 아니면 중립 또는 소극적으로 관망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입니다.
source; https://twitter.com/UKikaski/status/1672620517013037057/

   푸틴이 그간 해 온 짓으로 보아, 바로 옆에서 '푸틴의 요리사'라는 소리를 듣던 프리고진이 "벨로루시에 갈 때까지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푸틴의 말이 장래에도 생명을 보장한다고 믿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1]. 그러면 왜 푸틴의 푸들이라 불릴 만한 루카셴코의 중재를 받아들이고 모스크바 입성을 포기했을까요?  마음만 먹으면 그를 가로막을 군사력이 사실상 거의 혹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2].

  프리고진이 현재(화요일 밤)까지는 '봉기'의 이유에 대해서는 "바그너 그룹이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결행했다"는 첫 성명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진격 중단의 진짜 이유일지는 불확실하죠[3]. 단 처음에 내세운 이유가 "국방장관 쇼이구 등이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다. 우리가 가서 이들을 내쫓겠다"였지, "러시아에 해로운 푸틴을 제거하겠다"는 아니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솔직히 전 이것을 처음 알았을 때 이 반란이 성공하긴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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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란은 특히 지금처럼 기존 권력자의 지지도가 높을 때는 성공하기 쉽지 않습니다. 푸틴의 이미지가 좋지 않다면 모르겠는데, 중립적 조사 기관의 결과도 지지율이 적어도 50%는 넘을 것이라 봐야 할 것입니다[4]. 
 
  반란의 전례들만 놓고 본다면
 
  •  경제/사회적 조건을 내거는 경우; 한국사에서는 동학 혁명, 영국사에서는 와트 타일러의 반란(Wat Tyler's revolt)이 기억나네요. 결국 모조리 실패.
      와트 타일러의 반란이 실패한 이유는 왕이 일단 요구 대부분을 들어주겠다고 해서 봉기를 지속할 명분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왕은 타일러를 체포한 후 약속을 철회했죠.  이 유형의 반란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는 위기만 모면한 권력자가 수하들을 이용해 반란의 핵심 인물들을 제거하는 수가 많고, 이를 동력이 떨어진 반란군이(이럴 때는 모여든 군사들이 해산되었기 십상) 제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동학 혁명의 경우는 다시 궐기했을 때는 이미 일본군에게 훈련받은 신식 관군의 화력을 이길 수 없었지요.
  •  정권 수장을 바꾸려는 경우; 가장 유명한 사례는 아마 카이사르를 암살하고 공화 정체로 복귀하려 했던 3.15(ides of March)를 들 수 있습니다. 3.15가 실패한 이유는 근본적으로는 일반 시민들이 별로 공화정에 미련이 없었고 카이사르에게 충성하던 군단병들의 세력을 무시했기 때문이지만, '풀을 뽑으면서 뿌리를 뽑지 않은' 것처럼 처음에 가장 중요한 카이사르 충성파며 당일 현장에 있었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까지 제거해 주도권을 장악하지 못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사례는 '바리케이드의 날' 봉기를 이용해 사실상 앙리 3세(Henri III)를 감금하는 데 성공했던 기즈 공작(Duke of Guise)일 것입니다. 파리 시민들은 압도적으로 기즈의 카톨릭 연맹을 지지했으며, 앙리 3세는 신교(위그노)인 앙리 4세(Henri IV)를 지지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아주 인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즈 공작은 감시를 허술히 해 앙리 3세가 자신의 세력 기반인 파리에서 탈출하는 것을 막지 못했으며, 결국 유리한 입지를 충분히 이용하지 못한 채 앙리 4세에게 1588년 12월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바리케이드의 날 봉기 때 기즈 공작이 앙리 3세를 놓쳤다는 말을 들은 스페인의 프랑스 대사 베르나르디노 데 멘도사(Bernardino de Mendoza)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군주에게 반란을 일으키려는 사람은 우선 칼집부터 멀리 던져 버려야 하는데."
       물론 수장을 체포하든지 제거하든지는 꼭 해야 하지만, 그 외 수장에 충성하는 사람도 무력화시키지 않으면 반란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프리고진이 말한 동기는 명백히 첫 사례와 가깝습니다. 그리고 역시 푸틴은 여기서 살아 남았습니다.  그가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프리고진이 한 행동이 푸틴의 위신을 상당히 손상한 것은 분명합니다.  
      프리고진은 바그너 그룹의 전쟁범죄 때문에 서방으로 오기는 거의 불가능하므로, 기껏해야 아프리카나 중동 등 바그너 그룹을 필요로 하면서 러시아가 직접 손길을 미치기 쉽지 않은 국가에나 있을 수 있겠지요.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선에 있는 바그너 그룹을 통제하는 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되면 슬슬 손길을 뻗칠 것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프리고진에서 벗어날 때 쯤, 길면 2~3년?

  < 덧붙임 >
* 프리고진이 성공해 푸틴을 내쫓았다 해도, 예측이 불가능한 인물임은 분명합니다. 딱히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 볼 이유는 거의 없었습니다. '대놓고 전쟁 범죄자'가 최상위로 가서 좋아질 것이 있겠습니까?
* 많은 언론이 쇼이구와 그의 권력 투쟁에서 그가 졌다고 이미 3~4월 경 분석했습니다. 이는 이해하기 쉬운데, 디지탈 영상 시대에도 권력자 옆에 있는 사람이 멀리 나가 있는 사람보다 훨씬 유리한 법입니다.

  漁夫

[1] 지금 (한국 시간 화요일 오후니) 거의 이틀은 지났을 텐데, 한 번 더 메시지를 냈고 프리고진은 거의 벨로루시에 있음이 확인된 모양입니다.
[2] 현재 잘 조직된 소련 지상군이 이번 사건에서 와그너 그룹을 제지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간접 증거는 러시아 재벌 및 메드베데프 등이 비행기를 써 모스크바를 탈출했다는 것과 이동 경로에서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의 큰 충돌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데서 추측할 수 있습니다. 헬기가 격추되었다는 것처럼 저지하려는 노력이 없지는 않았으나, 이동 경로의 주유소 및 연료 저장 시설을 파괴하려는 목적으로 항공기를 몇 대 투입한 이상으로 의미 있는 지상군 교전은 전혀 없습니다.
[3] 봉기의 '방아쇠'는 러시아군이 "바그너 그룹 멤버도 러시아 국방부와 개별적으로 계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네요.
[4] 아래 유명한 '총합 146%' 짤 때문에 러시아 선거나 여론조사가 비웃음을 사기도 하는데 ㅋㅋㅋ
source; https://twitter.com/BlueFalcon47/status/153742086615744512/photo/1
이 건에 대해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적어도 전쟁 반대보다 찬성이 상당히 많다 봐야 합니다(link). 근본적으로 러시아인들은 우크라이나가 왜 자신에서 떨어져 나갔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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漁夫란 nick을 오래 써 온 듣보잡입니다. 직업은 공돌이지만, 인터넷에 적는 글은 직업 얘기가 거의 없고, 그러기도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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