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고의 드러머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10/02
지상 최고의 드러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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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나이다보니 부모상 빙모빙부상 소식 없이 지나가는 주가 드물다. 이번 연휴 때만 해도 세 건의 부고를 받았다. 그 중 하나는 같은 과 친구이자 동아리 친구의 부친상도 있다. 사학과를 나왔지만 녀석은 ‘2지망’ 출신이었다. 당시 대학 입시 제도는 정원의 7~80%를 ‘1지망’으로 채우고 나머지를 ‘2지망’과 ‘3지망’ 중 점수별로 뽑는 방식이었는데 녀석은 사학과를 2지망으로 썼고 1지망에서 미역국을 먹고 덜렁 사학과에 입학했던 것이다. 재수는 못하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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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이긴 하겠으나 역사란 특히 편향성(?)이 강하다 관심있는 사람에게는 무궁무진한 재미를 선사하지만 별반 흥미 없는 사람에게 역사 공부란 대체 내가 이걸 왜 알아야 하느냐고 절규하기 딱 좋은 고역이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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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권은 술 몇 잔 사주기로 함
신병철이라는 이름의 내 동기도 비슷했다. 교양 과목으로 ‘세계 문화사’가 있었다. 그래도 사학과라고 함께 강의 들은 선배들이 병철이에게 컨닝 페이커를 넘기라고 강요했다. 병철이도 나름 공부를 했는지 자신만만하게 컨닝 페이퍼를 넘겨 주고 나왔는데 시험 후 한 선배가 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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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중국 역사에서 ‘후한남북조’라는 게 있냐? 병철이가 써 준 대로 적긴 했는데 뭔가 이상해서.” 
 “위진남북조죠. 후한남북조가 어디 있어요.” 
 “으아아 병철이 이 자식. 명색이 사학과란 놈이.” 
 “나나 걔나 명색만 사학과지. 아이고 컨닝 페이퍼를 시킬 놈한테 시켜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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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병철이의 별명은 ‘후한남북조’가 됐다. 그리고 우리 둘은 과보다는 노래 동아리에서 더 술 많이 먹고 더 잘 놀고 더 잘 어울리며 대학 생활의 태반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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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파릇파릇 새싹 같았던 시절의 신입생 환영 공연에서 사용된 악기는 단 한 가지, 기타 두 대였다.반주반이었던 갖가지 주법을 가지고 공연에 쓰이는 다양한 노래들을 훌륭하게 소화해 내긴 했지만 사실 빈약하다 아니할 수 없는 악기 차림표였...
김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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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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