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잘 보이게 모아둬야 한다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12/20


어제는 반나절 내내 핸드메이드 페어를 구경했다. 물론 구경만 한 것은 아니고 쇼핑도 했는데, 그러는 동안 줄곧 자신이 올바르고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것인지 자문해야 했다. 이렇게 드문 행사에서는 총 소비 상한액을 대략 정해둔 다음, 그 안에서는 마음놓고 노는 것이 가장 심리적 부담을 덜고 충동에 의해 망하지 않으면서 즐거운 방식이라는 게 나의 행사 지론인데, 요즘은 등산 장비를 업그레이드하느라 있지도 않은 돈을 마구 퍼다 쓴 탓에 상한액을 정한다는 게 아예 불가능했다.

그나마 ‘이것만 사면 된다’고 목표로 정해놓은 거라면 작고 귀여운 새 모양 공예품 정도. 특별히 어딜 장식할 작정은 아니었고, 윙스팬이라고 새가 많이 나오는 보드게임의 선 플레이어 표시용으로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게임 안에도 멀쩡한 표시 타일이 있는데 왜 굳이 비싼 물건을 따로 사느냐고 합리적으로 따질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거기엔 게임을 더 보기 좋게 꾸며서 유저의 흥미를 돋우는 것도 게임 보유자의 무거운 책임 중 하나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겠다. 이렇게 먹으나 저렇게 먹으나 입으로 들어가는 건 똑같은 음식을 아름답게 플레이팅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오랫동안 찾아다녀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던 나의 예상과 달리, 행사장에 들어가자마자 닭 모양 오뚝이를 발견해서 목적을 달성하고 말았다. 기쁜 한편으로 다소 김새는 면이 있었다. 이후로 비교적 마음편히 구경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아무튼 일곱이나 모인 동행자들은 제각각 흩어지기도 하고 모이기도 하며 행사를 구경했는데, 어디서 보기 힘든 장신구들이 특히 인기였다. 무엇이든 예쁘게 만들어 귀에 걸면 그것이 바로 귀걸이고 패션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귀걸이들도 있었고, 전통 문양을 멋스럽게 살린 슈슈(스크런치 혹은 곱창밴드)나 댕기, 리본 등등도 돋보였다. 나는 반지 외에는 장신구를 하지 않은지 10년을 훌쩍 넘겨서 장신구에는 전혀 끌리지 않았지만 여성 친구들이 장신구에 눈길을 준다 싶으면 너무 어울린다고, 지금 사야 후회하지 않는다고 누가 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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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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