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군 출신 ‘재야 대통령’ 장준하 의문사

박선욱 · 시, 동화, 소설 및 평전을 씁니다.
2023/05/02
독립군 출신 ‘재야 대통령’ 장준하 의문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아카이브 원고)
   

글 박선욱(시인, 평전작가)
   

포천 약사봉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장준하 선생이 추락사했다고?”
1975년 8월 17일, 〈동아일보〉 의정부 주재 기자인 장봉진은 경찰의 제보를 받고 급히 사고 현장으로 뛰어갔다. 포천군 이동면 도평리 소재 운악산 약사봉 계곡이었다. 동행한 사진기자가 민첩하게 플래시를 터뜨리는 사이, 장 기자는 유일한 목격자로 자처한 김용환 씨 인터뷰를 땄다.
“장 선생님이 사고 현장 벼랑 위에 오를 때는 멀리 등산 코스를 돌아 올라가셨습니다. 그렇지만 하산할 때는 등산 코스가 아닌 벼랑으로 내려오려 하셨습니다.”
주변에는 장준하와 함께 등반한 호림산악회 회원들이 여럿 있어서 그들과도 인터뷰했다. 그중의 한 사람이, “어? 김용환 씨가 장준하 선생님 시계를 손목에 차고 있네?”라고 하자, 바로 옆 사람이 “그랴. 묘하네.”라며 갸웃거렸다.
의정부 검찰 지청의 요구에 따라 의정부의 심외과 의사인 심구복이 시신을 검시했다. 시신의 상태는 의외로 깨끗했다. 옷도 찢어진 곳이 하나도 없었다. 꼼꼼히 살핀 뒤, 그는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오른쪽 귀 뒤쪽에 있는 급소가 예리한 흉기에 찔린 듯한 후두부 함몰에서 기인함”이라는 소견을 발표했다. 장 기자는 수첩에 “추락사인데도 전신에 골절상이 하나도 없음”이라고 썼다. 현장에 있던 경찰은 기자들에게 추락사라고 강조했다.
추락 지점은 경사 75도 높이 12미터가 넘는 깎아지른 벼랑이었다. 추락할 때 긁히거나 찢긴 상처로 만신창이가 될 텐데, 시신에 외상의 흔적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큰 의문점이었다. 전문 산악인들도 장비 없이는 오르내리기 힘든 곳인데도 “등산 코스가 아닌 벼랑을 맨몸으로 내려오려”고 했다는 목격자 진술이 걸렸다. 취재 결과, 장준하는 평소 산을 탈 때 일행들에게 ‘여덟 팔(八)자 걸음으로 내려와야 한다.’고 자주 강조했다는 증언도 확보했다.
18일, 각 언론은 경찰 발표문대로 “장준하가 실족해 추락사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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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실천문학》 으로 등단. 시집 《회색빛 베어지다》 《눈물의 깊이》 《풍찬노숙》, 인물이야기 《윤이상》 《김득신》 《백석》 《백동수》 《황병기》 《나는 윤이상이다》 《나는 강감찬이다》 등. 《윤이상 평전: 거장의 귀환》으로 제3회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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