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릉역 출근길] 후배의 이직과 선배의 품격

유철현
유철현 인증된 계정 · 편의점 홍보맨
2024/05/08
 출근 하자마자 같은 언론홍보 파트 후배 S가 느닷없이 면담을 청해 왔다. 느낌이 왔고 역시나 이직 통보였다. 편의점 회사를 떠나 커피 회사로 가겠단다. 어쩐지 요즘 연차를 자주 쓰더라니.. 담담한 척했지만 예상치 못한 소식에 충격이 적지 않았다. 언론 실무는 나와 S를 포함해 총 3명이었고 조만간 한 명을 더 뽑아 4명 체제를 구상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계획한 충원이 예상치 못한 결원으로 급반전을 맞은 것이다. 일은 많고 사람은 줄어드니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앗 뜨거!

퇴근 후 이 소식을 아내에게 전했더니 그보다 더 충격적인 코멘트가 돌아왔다.
"오빠가 빌런이었네"
"어? 내가?"
일 년 전 S의 사수이자 당시 나의 직속 후배 E가 이직한 걸 두고 하는 말이었다. 밑에 후배 둘이 릴레이로 회사를 떠나는 것이니 정황상 범인(?)은 나였다. 아.. 진짜 또라이는 자기가 또라인 걸 모른다더니 내가 그 말로만 듣던 T.O.P 또라이었단 말인가?! 《식스센스》의 브루스 윌리스처럼 대혼란에 휩싸였다. 하지만 나는 이를 단호히 부정했다. 그동안 나는 단 한 번도 후배들이 이직을 고민할 정도로-그들이 워낙 출중했기에-거친 훈계를 한 적이 없었고 빈곤한 잔고에도 언제나 지갑을 활짝 열었으며 공사 구분 없는 배려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떠나는 후배들도 특별히 나에 대한 감사와 미안함을 전했고 무엇보다 우리는 인간적으로 친했으니..(말이 길어질수록 내가 점점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은데.. 아무튼 나 빌런 아니라고!)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팀원들이 특별히 모나거나 험상궂은 것도 아니었다. 이에 대한 근거는 블라인드에서 어느 익명의 직원이 '홍보팀=북유럽 같은 팀'이라 평한 걸로 갈음하겠다.

S의 송별회는 회사 근처에 새로 생긴 궁중보양식 맛집에서 성대하게 치뤘다. 우리는 가게 주인의 따가운 눈초리에도 아랑곳 않고 수육 전골에 육수를 무한 리필하며 늦은 시간까지 석별의 정을 나눴다. 그간의 관계를 정산하기엔 야속한 밤은 짧기만 했다. S의 마지막 변은 ‘모두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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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GF리테일 입사(2010년) - BGF리테일 홍보팀 언론홍보 파트 수석(2012년~현재) - 공인중개사(국토교통부), 가맹거래사(공정거래위원회), 경영지도사(중소벤처기업부) 자격 보유 - 편의점 에세이 <어쩌다 편의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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