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시대 간첩이 된 천재 이방인 - 무함마드 깐수 간첩 사건(1996)

강부원
강부원 인증된 계정 · 잡식성 인문학자
2022/12/27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간첩, 무함마드 깐수 교수(『경향신문』,, 1996년 7월 22일)

<처용가>의 ‘처용’은 아랍 사람?

서라벌 밝은 달밤 
밤늦도록 노닐다가
돌아와 잠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구나.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뉘 것인가
본디 내 것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오.
                    - <처용가>

‘처용가’는 신라 헌강왕 때(879년) 처용(處容)이 지은 팔구체 향가이다. 처용이 자신의 아내가 역신(疫神)과 동침하는 것을 보고, 이 노래를 부르자 역신이 사죄하며 물러갔다고 한다. 국문학 연구자들은 ‘처용가’를 흔히 관용정신을 통해 축신(逐神)을 이뤄낸 주술적 무가로 해석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주해(註解)가 있다. ‘처용무’를 출 때 쓰는 처용의 가면이 서역(西域) 사람과 닮아 있는 점과 당시 신라가 아라비아 문화권 나라들과 무역 및 교류를 활발히 진행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처용이 아랍 사람일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처용관복’ 1493년 <악학궤범> 제9권 관복도설(冠服圖說) 중 처용관복도설

항공기를 타고 가도 하루 종일 걸릴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이인 한국과 아랍 국가 사람들이 1,000년도 더 전에 서로 만나왔다니 놀랄 일이다.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와 가까운 울산 반구동에서 당시 아랍 문화와 해상 교류한 흔적이 발견되는 등 이 같은 학설에 힘을 싣는 증거들이 실제로 보고되고 있다. 때문에 처용으로 묘사된 인물이 아랍 사람이라는 주장은 현재에도 ‘처용가’를 해석하는 주류 학설로 인정받고 있으며, 신라와 서역과의 교류가 일찍부터 시작되었음을 입증하는 문학적 근거로 차용되고 있다. 
   
신라시대 표기법인 향찰로 기록된 향가를 현대의 우리말로 처음 완역한 학자가 ‘양주동’과 ‘김완진’이었다면, ‘처용가’ 해석에 동서 문화 교류의 역사를 덧...
강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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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과 오래된 잡지 읽기를 즐기며, 책과 영상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인문학자입니다.학교와 광장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만나오고 있습니다. 머리와 몸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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