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된 것이 본질에 가깝다, <가여운 것들>
2024/04/11
※ '씨네21'에 기고한 글입니다.
※ <가여운 것들>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가여운 것들>을 보며, 이상했다. 영화는 시종 벨라(에마 스톤)를 화려하게 비추지만, 진짜 보여주려는 건 따로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뭔가가 더 있다는 묘한 기분. 영화의 숨겨진 이면을 보기 위해, 한 여자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영화의 초반, 벨라의 사랑스러운 순수는 돋보인다. 그런데 벨라의 순수함을 좀 유심히 뜯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순수는 물들지 않은 공백의 상태. 그러니까 무언가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벨라에게 없는 것은 무엇일까? 즉각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녀에게 없는 것은 과거다. 성인이라면 누구나 있는 자신만의 역사가 벨라에겐 없다. 그러므로 지식과 교양도 없다. 세상을 모른다. 이것은 <가여운 것들>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축으로 작동한다. 벨라는 좌충우돌하며 세상을 알아가고, 그 과정에서 코미디와 스펙터클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표면에 드러난 벨라의 공백이다.
매력적인 몸을 가진 성녀, 벨라
하지만 그게 다인가? 나는 영화가 내색하고 있지 않은, 그러나 벨라에게 명백히 없는 것이 신경 쓰였다. 분명히 거기 없어서 부자연스러운데, 아무렇지 않다는 듯 영화가 함구하는 것들. 먼저 벨라는 이상하게도 부에 대한 욕구가 없다. 배부르고 등 따습게 살고 싶다는 본능적 욕구 말이다. 크루즈 여행으로 최고급 수준의 생활을 향유했으면서도, 사창가 모텔의 열악함에 대해 (인지할 뿐) 불만이 없다. 이런 점에서 벨라는 <소공녀>(2017)의 미소(이솜)와 비슷한 위화감을 느끼게 한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상적인 삶을 사는데, 이상하게도 의식주에 관한 기본적 욕구가 희미하다. 그런 점에서 그녀들은 체취도 나고 때로 악취도 나는 인간이 아니라, 누군가 머릿속에서 떠올린 멋진 여성을 스크린 위에 구현해낸 조각상 같다. 두 번째로 벨라에게는 사회적 계급 상승의 욕망이 없다. 사회 속에서 부대끼며 더 높이...
2016년 한 영화잡지사에서 영화평론가로 등단.
영화, 시리즈, 유튜브. 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씁니다.
INF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