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손잡고 청량리 588에

루시아
루시아 · 전자책 <나를 살게 하는> 출간
2024/01/26
엄마를 놓칠세라 손을 꼭 잡고 길을 걷는다. 엄마의 빠른 걸음에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 나는 보폭이 모자라 쫑쫑 뛰듯 걸을 수밖에 없었다. 한데 지나는 길이 평소 길과 다름을 직감했다. 알록달록한 조명은 몇 발자국 걷지 않아도 자꾸만 나타나 반짝였고, 까만 밤도 아닌데 이른 저녁의 쨍한 조명은 제각각 예쁜 언니들을 비추고 있었다. 인형의 집들만 모아 놓은 거리를 걷는 듯했다. 내 키보다 훨씬 큰 인형들은 내가 걸을 때마다 새로운 얼굴로 바뀌며 나를 쳐다봤다. 평소라면 예쁜 인형들 사이에 있는 나는 더없이 행복했을 텐데 이상하게 뭔지 모를 서늘함이 느껴졌다. 누가 뭐라고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괜히 주눅이 들었다. 엄마와 잡은 손에 힘은 더 꽉 들어갔고 종종걸음은 더 빨라졌다.

어린 나이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엄마는 날 겁주려고 했던 게 아니라는 걸.

길을 빙 돌아가는 것보단 질러갈 수 있는 지름길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내 손을 잡고 청량리 골목을 그냥 지나가신 것 같다. 길이란 건 사람이 걸으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니까 있는 길을 엄마는 그저 이용한 것뿐.


하지만 요즘 시대에 대입해 보았더니, 요새 엄마들이면 절대 그럴 수가 없는 거였다. "맹모삼천지교"라고 맹자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의 이사도 불사하는 맹자의 열혈엄마까지는 아니더라도 가급적 좋은 곳에서 될 수 있으면 좋은 것만 보여 주며 아이를 키우고 싶어 하지 아이에게 해가 되는 것은 보여주지 않으려 애쓰는 엄마들이 더 많은 까닭이다. 세 번 이사가 대수인가. 유모차를 밀다가도 자식을 향해 돌진하는 차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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