놉, 모두를 포식해버리는 무책임한 모호함

김경수
김경수 · 시각문화 연구자
2022/12/13
영화 <놉> 포스터의 부분
촬영 감독 크레이그는 동물 다큐멘터리를 편집하고 있던 중, 캘리포니아 인근 마을에서 집단 실종 사건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한다. 전에도 그 마을에 살고 있는 남매가 찍기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자고, 그에게 무언가 찍자고 제안한 적이 있던 참이었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성공할 경우에 자신에게 큰 명예가 생기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아이맥스 수동 필름을 동원해 출장을 나간다. 크레이그가 이때 켜둔 다큐멘터리는 사자가 사슴을 먹는 영상으로 동물 사이의 약육강식을 드러내고 있다. 조던 필은 이런 장면과 마찬가지로 자연을, 혹은 영화를 대하는 백인 영화인들의 태도를 약육강식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이같은 암시는 영화 곳곳에 드러난다. <놉>은 어쩌면 이 이분법만 제대로 지켰더라면, 훌륭한 텍스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조던 필의 <놉>이 기만적인 영화인 이유는 영화에서 본인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조던 필 영화의 강점은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를 잘 다룬다는 점이다. 조던 필의 영화를 잘 따라간다면 우리는 그의 영화가 그가 각본을 쓸 당시에 흑인 문학 신에서 유행하고 있는 키워드를 잘 따서 가져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겟 아웃>은 토니 모리슨의 <빌러브드>가 만든 흑인 고딕 문학의 뉘앙스에 기대고 있으며, <어스>는 퓰리처상 수상작 콜슨 화이트헤드의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에 등장하는 흑인의 세계가 지하에서 백인의 세계와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대체역사 세계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 마찬가지로 <높>은 최근에 흑인 문학에서 유행하고 있는 크룰루의 전복적 독해로부터 온다. 빅터 라발의 <블랙 톰의 발라드>는 물론이며 조던 필이 드라마화 제작자로 참여하기도 한 <러브크래프트 컨트리>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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