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같은 ......
2022/04/06
25년전에
공부하러 떠난
남편이 있는 영국으로 왔다.
그 당시만 해도
영국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부자나라로
돈 있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듯 했다.
전혀 준비없이 시작 된
외국에서의 우리 삶은
정서적 가난과 설움이었다.
그 때만 해도
영국인들의 머리에는
6.25 참전 용사들과
그 참상을 뉴스로 보았던
이곳 사람들의 기억에
한국이란 나라는
너무 가난하고 불쌍한 나라 사람들로
조각되었던 것 같다.
하얀 피부 사람들 속에
거무 튀튀한 우리의 가족들이
이들에게는
너무나 생소하고 신기했었나 보다.
문화의 차이점은
높은 담벼락 같았고,
언어의 장벽은 나를 절망 시켰다.
별로 신경쓰지도 않았던
작은 발음하나와
억양에 따라 달라지는
미묘한 표현들이 나를 울고 웃겼다.
이런 상황들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나를
이 땅의 이방인으로 ...
공부하러 떠난
남편이 있는 영국으로 왔다.
그 당시만 해도
영국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부자나라로
돈 있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듯 했다.
전혀 준비없이 시작 된
외국에서의 우리 삶은
정서적 가난과 설움이었다.
그 때만 해도
영국인들의 머리에는
6.25 참전 용사들과
그 참상을 뉴스로 보았던
이곳 사람들의 기억에
한국이란 나라는
너무 가난하고 불쌍한 나라 사람들로
조각되었던 것 같다.
하얀 피부 사람들 속에
거무 튀튀한 우리의 가족들이
이들에게는
너무나 생소하고 신기했었나 보다.
문화의 차이점은
높은 담벼락 같았고,
언어의 장벽은 나를 절망 시켰다.
별로 신경쓰지도 않았던
작은 발음하나와
억양에 따라 달라지는
미묘한 표현들이 나를 울고 웃겼다.
이런 상황들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나를
이 땅의 이방인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