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태운 뒤 마주한 치명적인 아름다움

김성호
김성호 인증된 계정 · 좋은 사람 되기
2023/09/22
▲ 어파이어 포스터 ⓒ M&M 인터내셔널

공자는 사람 나이 예순을 가리켜 이순(耳順)이라 하였다. 직역하자면 귀가 순해진다는 뜻인데, 후대의 학자들은 이를 바깥의 소리를 들어도 거슬리는 것이 없고 마음으로 받아들여 본뜻을 이해하게 되는 경지라고 풀이하고는 한다. 모든 이가 예순이 된다고 이순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물론 아니다. 꾸준한 수양으로 스스로를 완성시켜 가다보면 마침내 만나는 경지가 곧 이순이다. 거슬리는 것 없이 순리와 닿는 것, 그렇다면 얼마나 평안하겠는가.

1960년생으로 이제 63세가 된 크리스티안 페촐트다. 2020년 <운디네> 발표 이후 새로운 작품을 구상했으니 그 영화가 바로 신작 <어파이어>다. 꼭 이순이 된 나이, 평생을 읽고 쓰고 영화를 만든 끝에 마침내 거장의 반열에 오른 페촐트의 관심은 어느 어린 글쟁이의 성장과 그 과정 곁에서 만난 인연, 그리고 그를 비켜간 사건에 대한 것이었다.

스스로 기자였고, 다시 평론가였다는 사실을 종종 이야기하는 그다. 기자와 평론가를 거쳐 영화감독에 이른 경력은 그가 가졌을 꿈과 열망을 은근히 내비치는 듯도 한데, 드디어 제 영화 속에 미숙한 글쟁이를 등장시키니 사람들은 바로 그가 저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닌지 관심 어린 눈으로 들여다보기에 이른 것이다.
▲ 어파이어 스틸컷 ⓒ M&M 인터내셔널

곤두선 젊은 작가의 타는 듯한 여름

영화는 어느 여름 독일 작은 마을에서 출발한다. 젊은 작가 레온(토마스 슈베르트 분)은 친구 펠릭스(랭스톤 우이벨 분)가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본다. 기분 좋게 울려퍼지는 음악과 창문 너머에서 들이치는 햇살이 절로 마음을 가볍게 할 것만 같은 바로 그즈음, 차가 멈춰서고 이들은 제게 문제가 생겼단 걸 깨닫는다. 오가는 차 없는 한적한 도로다. 이들은 짐을 내려서는 목적지까지 걸어가기 시작한다.

겨우 도착한 곳은 펠릭스의 부모가 구입한 별장이다. 발트해 해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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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서평가, 작가, 전직 기자, 3급 항해사. 저널리즘 에세이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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