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강요받는 젠더폭력 피해 팔레스타인 여성들

김양균
2023/08/14

2019년 예루살렘. 계단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아이를 업은 팔레스타인 여성이 봤습니다. 보따리를 짊어지고 유모차를 들고서 계단을 낑낑거리고 오르고 있는데, 앞장서서 걷던 남편이 짜증을 냈습니다.

“얄라, 얄라!(빨리빨리)”

유일하게 아는 아랍어가 ‘얄라’였던터라 ‘남편 참 고약하네’ 싶어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이 말이 툭 튀어나왔습니다.

“도와드릴까...요..?”

순간 냉랭한 공기. 상관하지 말라는 여성의 강한 경고 섞인 눈빛에 ‘아차’ 싶어 말을 얼버무리고 슬그머니 자리에 다시 앉았습니다. 부부 사이의 일을, 동양인 남성이 개입한다는 것은 그 여성에게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죠. 이슬람 문화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오지랖’이었습니다.
출처: YANGKYUN KIM

팔레스타인 서안지구(Westbank)의 임시 행정수도인 라말라(Ramallah)에서 국제 법률단체인 ‘알 하크(AL-HAQ)’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샤완 자브린 대표는 자신을 ‘죄수’ 신세라고 했습니다.

“서안지구는 하늘이 뚫린 감옥입니다. 서안지구는 가자지구(Gaza strip)보다 출입이 자유로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더 상황이 나쁘죠. 출입은 언제라도 노란색 철문으로 통제될 수 있습니다. 해외 이동도 어렵죠. 그래요, 우린 감금돼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가장 큰 감옥의 죄수를 만나고 있는 겁니다.

이동의 자유를 비롯해 이스라엘에 의한 ‘다양한’ 점령폭력(Occupation Related Violence)의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팔레스타인인의 주장은, 엉뚱하게 팔레스타인 여성들을 향한 젠더폭력(gender-based violence)으로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고 있는 각종 폭력은 비단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특성 때문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프란츠 파농(1925-1961)의 수평폭력(Lateral violence)의 성격도 갖고 있기 때문이죠. (1)

“팔레스타인인은 이스라엘 점령이라는 억압적인 현실에 대해 공감대를 갖고 있죠. 본질적으로 피해자라는 인식 하에 여러 연대를 맺지만, 팔레스타인 여성의 위치는 특수합니다. 종교적으로 여성의 역할은 제한받고 있고, 여성이 돈과 같은 재산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는 여성들을 향한 다층적인 요인(점령·젠더·종교 등)에 따른 또 다른 억압이 됩니다. 항상 남성이 우선되고, 여성은 뒷전이죠. 따라서 팔레스타인 여성의 현실이 어떤가에 대해 인식하는 것은 그들이 처한 상황을 말해주는 아주 중요한 지점입니다.” (라말라 팔레스타인 여성위원회 활동가 마날의 증언)
출처: YANGKYU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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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균
김양균 인증된 계정
의학기자
여러 의미의 건강에 대해 쓴다. 전자책 <팔레스타인의 생존자들>, <의사 vs 정부, 왜 싸울까?>, <결말을 알고 있는 이야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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