눕고 일어나는 생의 행위, <플랜 75>와 <소풍>

홍수정 영화평론가
홍수정 영화평론가 인증된 계정 · 내 맘대로 쓸거야. 영화글.
2024/03/02
 
※'씨네21'에 기고한 글입니다.
※<플랜 75>, <소풍>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플랜 75> 스틸컷
고령화사회. 정제된 표현으로 감쌌지만 결국 ‘늙었다’는 속삭임이다. 지난 몇년간 우리는 현실을 진단하고 처방전을 내는 데 몰두했다. 늙음은 자주 수술대에 오르듯 공론의 장에 올라 이리저리 들춰지고 해부된다. 하지만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노년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본 적 있었나? 적어도 나는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활자와 숫자를 넘어, 뜨거운 숨을 내쉬는 이들에 대한 응시가 필요한 때. 이 시기에 노년의 마지막을 다룬 두편의 영화, <소풍>과 <플랜 75>가 우리를 찾아온 것은 필연일지도 모르겠다.

소재는 비슷하지만, 두 작품은 서로 닮은 점이 없다.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이들이 공유하는 은밀한 특징이 하나 있는데, ‘누워 있는 노인’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꿀 같은 잠이나 편안한 휴식은 아니다. 그들은 몸이 망가져서, 혹은 일어나지 않기로 결심해서 누웠다. 이 상태는 죽음을 향해 가는 길목에 있다. 그래서 누운 노인의 형상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공포를 건드린다. 어쩌면 삶 자체가 그런 것 아닐까. 아이 때 안간힘으로 몸을 일으키며 시작된 인생은 어느 날엔가 가만히 뉜 채 끝을 맺는다. 그러니 일어나고 눕는 일은 삶에 대한 메타포다.


왜 그들은 산으로 가는가


<플랜 75>에는 고령의 여성 미치(바이쇼 지에코)가 누워 있는 장면이 나온다. 플랜 75를 신청한 그녀는 마지막을 준비하며 병상에 누웠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순간. 미치는 조심히 고개를 돌려 옆의 자리를 본다. 거기에는 가만히 누워 눈을 감은 한 노인이 있다. 숨을 거둔 것 같다. 이 장면은 러닝타임 내내 안락사를 소재로 삼은 영화가 처음으로 그것의 실체를 마주하는 순간이다. 영화는 노인의 전부를 보여주는 대신 커튼 사이로 보이는 움직임 없는 얼굴, 감은 두눈에 집중한다. 그는 일어나지 않는다. <소풍>에도 노인이 누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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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한 영화잡지사에서 영화평론가로 등단. 영화, 시리즈, 유튜브. 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씁니다. INF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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