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이토록 ‘남성 피해자’를 말하기가 어려울까 ①

이가현
이가현 인증된 계정 · 페미니스트 정치활동가
2023/03/01
남자 못버린 페미니즘 3화
지난 글에서는 가해자 주변인으로 사는 것에 대해서 풀어보았다. 지난 글에서 내가 사례로 언급한 가해자가 모두 남성은 아니었다. 피해자가 남성인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성별을 밝히지 않았다. 어떤 성별을 가진 가해자든 같이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는 똑같으니까. 마찬가지로 성폭력범죄에서 성별과 관계없이 피해자의 곁에 설 수 있는 용기,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 행동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남성 피해자’에 대해 말하는 것은 나에게는 너무나 어렵다. 이 주제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고민하다가 2주나 연재를 빼먹었을 정도로. 그럼 다른 주제를 써 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언제나 피할 수는 없기에 나중에 생각이 바뀔지라도 지금의 고민을 글로 남겨보려 한다. 내가 성폭력을 말할 때 남성 피해자를 언급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세 가지다. 
   
① ‘남성 피해자’가 언급되는 시점이 ‘부적절한 시점’인 경우가 많다. 
② 페미니스트로서 남성의 피해를 말하는 것이 여성의 피해를 등한시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③ 남성들이 겪는 성폭력이 ‘남자라서’ 겪은 폭력이 아닌 것 같다.
   
이번 글에서는 ① ‘남성 피해자’가 언급되는 시점이 ‘부적절한 시점’인 경우가 많다. 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를 공개적으로 말하는 시점은 정치적이다.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순수하지 못하다’는 비하적 의미가 아니다. 피해자는 사회적 변화 속에서 자신의 피해를 재해석하고 어떤 방식으로 말할지 고민하고 청자를 상상하고 자신의 목소리가 잘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협상하며 말한다. 그 과정에서 고발의 목적, 시점, 계기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정하게 된다. 피해를 겪고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조건이 약화되거나, 그 조건은 그대로지만 들어줄 사람이 많아지거나, 가해자가 해당 사안으로 도덕적으로 비난받은 적도 없이 대단히 도덕적인 사람처럼 행세하는 경우에 피해자는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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