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의 삶을 살다 간 자유인의 肖像-『윤이상 평전: 거장의 귀환』

박선욱 · 시, 동화, 소설 및 평전을 씁니다.
2023/03/18
경계인의 삶을 살다 간 자유인의 肖像 
『윤이상 평전: 거장의 귀환』
   
박선욱(시인)
   
   
1967년 겨울, 서대문구 현저동의 독방 안에서 윤이상은 엎드린 자세로 오선지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살을 에일 듯한 추위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필을 놀려 신들린 듯이 악보를 채워 나갔습니다. 그는 곱은 손을 호호 불며 희극 오페라 「나비의 꿈」을 쓰고 있었습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그가, 왜 이 곡을 완성하고자 온 힘을 기울였을까요? 이 물음이 글을 밀고 나아가게 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야말로 윤이상의 삶과 음악을 이해하는 중요한 가늠쇠라 여겼습니다. 평전 작업은 한 인물에 대한 단순한 서술이 아닙니다. 그 인물이 시대 상황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해야 하며, 역사 속에서 숨 쉬는 한 인물을 통해 당대의 상황적 진실과 미래 전망을 드러내 보이는 점이 중요합니다. 평전 작업은 시간을 뛰어넘는 통시성 속에서 인물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지향점을 지녀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집필 원칙으로 『윤이상 평전』을 썼습니다.
윤이상은 1917년 9월 17일 경남 산청군 덕산면에서 태어나 통영에서 성장했습니다. 통영은 한반도의 문화가 고스란히 응축, 온존해 있던 문화의 寶庫였습니다. 전통음악의 음률에 익숙한 윤이상은 세병관에 마련된 보통학교의 한 교실에서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풍금을 만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사건이었지요. 육자배기나 판소리, 민요 가락만 듣고 자란 윤이상에게 음악이란 單音의 세계였습니다. 이에 비해 풍금의 和音은 다성 음악의 세계였습니다. 그 새로움,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윤이상을 단박에 사로잡았습니다. 윤이상은 도쿄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동네 청년에게서 바이올린과 기타 치는 법, 오선지 그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열세 살 무렵에는 간단한 화성을 곁들인 연주곡을 작곡했습니다. 어느 날, 봉래극장의 무성영화 막간에 경음악을 연주하는 관현악단이 자신의 곡을 연주하는 광경을 목도했습니다. 황홀한 경험이었지요. 한 평범한 어린아이가 비범한 작곡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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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실천문학》 으로 등단. 시집 《회색빛 베어지다》 《눈물의 깊이》 《풍찬노숙》, 인물이야기 《윤이상》 《김득신》 《백석》 《백동수》 《황병기》 《나는 윤이상이다》 《나는 강감찬이다》 등. 《윤이상 평전: 거장의 귀환》으로 제3회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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