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 앞에서 때려주세요 - 약자가 야만을 다루는 방법
2023/01/27
● “네가 그 오아영이구나. 네가 그렇게 나를 팔고 다닌다며?” 중학교 3학년 시절의 어느날 복도에서 마주한 교장선생님이 내 명찰을 확인하고는 대뜸 걸어온 말. 아이고 눈도 좋으셔라.
그도 그럴 것이 나 교장선생님 판 거 맞아요. 잘 팔리더라고요. 고마웠어요.
학창시절 나는 교사들을 대체로 좋아할 수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비이성적인 체벌이었고, 그 체벌의 대상은 주로 약자였다고. 그러니까 왜 있잖아. 반에 꼭 한둘씩은 있는 유독 기죽은 아이. 생활보호대상자에, 부모님이 부재하고 뭐 이런 조건들을 지닌 아이. 그렇게 챙김받지 못하는 티가 신발과 가방과 교복에서 자세에서 얼굴표정에서까지 구석구석 줄줄 흐르던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심심하면 나오라고 해서 장난처럼 때리던 선생님들의 비릿한 얼굴을 나는 기억해. 그 표준 막대기, 긴 나무 막대기로 정수리를 내려때리면 통 소리가 난다는 걸 아시나요. 인간의 머리엔 뭐가 들었길래 그런 소리가 나는걸까. 악기인가. 때리는 일은 웃긴 일이 아닌데 그들은 때로 놀리며 때리고 조롱하며 때렸어. 선생님들이 그랬어. 아이들은 웃었어. 나는 모두가 다 역겨웠어.
어느 체육시간을 나는 절대 잊지 못해. 체육선생님은 윗학년과의 합동수업가운데 그 반의 이런 오빠를 갑자기 나오라더니 체육교과서에 나오는 인체의 운동기능에 대해 알려준다더니 막 발로 찼어. 할머니랑 산다던 그 까맣게 마른 오빠는 특유의 비굴한 얼굴로 막 웃으며 주춤주춤 피했고 피하는 그의 엉덩이를 선생은 쫓아가며 발로 찼다. 발차기를 하던 그의 다리모양과 그 다리를 감쌌던 회색 체육복 떡볶이 바지. 그렇게 1...
그도 그럴 것이 나 교장선생님 판 거 맞아요. 잘 팔리더라고요. 고마웠어요.
학창시절 나는 교사들을 대체로 좋아할 수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비이성적인 체벌이었고, 그 체벌의 대상은 주로 약자였다고. 그러니까 왜 있잖아. 반에 꼭 한둘씩은 있는 유독 기죽은 아이. 생활보호대상자에, 부모님이 부재하고 뭐 이런 조건들을 지닌 아이. 그렇게 챙김받지 못하는 티가 신발과 가방과 교복에서 자세에서 얼굴표정에서까지 구석구석 줄줄 흐르던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심심하면 나오라고 해서 장난처럼 때리던 선생님들의 비릿한 얼굴을 나는 기억해. 그 표준 막대기, 긴 나무 막대기로 정수리를 내려때리면 통 소리가 난다는 걸 아시나요. 인간의 머리엔 뭐가 들었길래 그런 소리가 나는걸까. 악기인가. 때리는 일은 웃긴 일이 아닌데 그들은 때로 놀리며 때리고 조롱하며 때렸어. 선생님들이 그랬어. 아이들은 웃었어. 나는 모두가 다 역겨웠어.
어느 체육시간을 나는 절대 잊지 못해. 체육선생님은 윗학년과의 합동수업가운데 그 반의 이런 오빠를 갑자기 나오라더니 체육교과서에 나오는 인체의 운동기능에 대해 알려준다더니 막 발로 찼어. 할머니랑 산다던 그 까맣게 마른 오빠는 특유의 비굴한 얼굴로 막 웃으며 주춤주춤 피했고 피하는 그의 엉덩이를 선생은 쫓아가며 발로 찼다. 발차기를 하던 그의 다리모양과 그 다리를 감쌌던 회색 체육복 떡볶이 바지. 그렇게 1...
사랑과 아름다움. 이 둘만이 중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삶의 이유이자 내용이자 목적이다. 실은 이들이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을 살게 만드는 절대적인 두가지라 믿는다. 인간은 제 영혼 한 켠에 고귀한 자리를 품고 있는 존엄한 존재라고 또한 믿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 보이지 않는 자리들을 손에 만져지도록 구체적으로 탁월하게 설명해내는 일로 내 남은 삶은 살아질 예정이다. 부디 나의 이 삶이 어떤 경로로든 나와 마주하는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살아있게 만들 수 있다면. 제발.
아직도 체벌이 이렇게 있었네요. 중학교 들어갔을때 당시엔 나름 밀고 있던 어떤 말을 애들끼리 했던건데 선생님이 잘못듣고 양호실 같은 곳으로 아무도 없는데로 따로 불러서 말그대로 허벅지에 피멍들게 맞았던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팔학군으로 전학간다며 이사갈 때, 그것때문에 이사가냐고 무슨 기타치며 노래까지 불러줬던 미친 노총각 수학선생이 있었는데 그 때의 기억이 새삼ㆍㆍ
오늘에서야 오아영님을 알게 되고 글을 읽기 시작했는데 드라마속 먼치킨 주인공이 툭 튀어나와 다양한 매력을 시전하며 글로 대화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부당한 체벌 시도에 이런 효과적이고 논리적이며 참신한 대응이라니요.. 분명 한번쯤 드라마속에서 구현될것 같은 에피소드가 아닐지
최근 더 글로리와 3인칭복수를 연속으로 보면서 이 몹쓸 학폭을 최소화 시키려면 어떤 노력과 방법이 필요한건지 알고 싶어졌는데 기회가 된다면 오아영님의 생각을 한번 들어보고 싶군요.. 글 정말 잘 읽었슴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 될 수 없는 폭력을 당연하고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던 학창시절이 떠오릅니다. 여중, 여고라 덜하긴 했지만 학생들의 인권이 바닥에 있었던 것은 별반 다를바가 없었지요.
용감한 오아영님의 글 잘 읽고 갑니다^^
@최성욱
실은 이 글은 학생인권조례 폐지 얘기가 나오는 시의에 맞춰서 업로드한 글이기도 한데요,
야만의 시대였어요 정말이지. 어느 시절의 교실은.
@mjkim724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가 궁금한걸요, 듣고 싶어요
@gmk0316
예술가들은, 정신의 좌표를 본다면 시중에서 말하는 진보 라는 개념으로는 아우를 수 없도록
저 멀리 최전방에서 진보적인 사람들이기도 한데요
그래서 진보진영이라 칭해지는 집단의 구체적인 정치적 액션에 동의가 안되기도 합니다. 예술가들 입장에선 그조차 너무 보수적인 면이 많달까요.
동시에 예술가들이 지향하는 아름다움 안에는 보수적 가치도 있을 거에요.
영영 변하지 말아야 할 인간성이나 보편가치를 목숨걸고 사수하고자 하는 것이 또한 예술가의 자리기도 하니까요.
다만 진리에 가 닿기를 추구하며 아름다움의 최대치를 추구한답니다. 그래서 급진적이고 그래서 보수적이고 그래서 바보같고 어디에도 속할 수 없기도 하다는 생각이에요.
우리는 그저, 아름다움의 영토 에 속한다고. 그리고 아름다움은 현실에선 무쓸모하기도 하지요. 일단은요.
지식인도 비슷할 거라고 봐요. 중요한건 시중에서 얘기하는 진보냐 보수냐라기보다는 진리 라는 지향(절대적 진리는 아무도 모르는 거지만 그래도 그것이 무엇일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닿으려고 계속 애쓰는 일은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에 입각해서 투명하게 나아가고있는가 일 거라고 생각해요.
@yeonujoo
표현해주셔서 감사해드려요. 그 폭력을 겪어 "주면" 그 폭력을 어쨌든 내 삶에서 몸에서 하나의 작동가능한 샘플로 용인한 거기도 해서요. 그렇게 그쪽으로 포섭되리기 쉬워요. 폭력자체보다도 그게 더 무섭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한답니다.
그치만 내가 좀처럼 막지못한 폭력이란 있을수밖에 없고,
그렇기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구조적 폭력들에 대해서는 걷어내는 작업들을 이후에 함께 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도 해요.
후덜덜 하네요 존다고 문진으로 머리 두들기는 체육교사 보았던 과거가 떠올라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입니다~^^
나는 그래서 예술가와 지식인은 진보적이어야 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함.
오늘에서야 오아영님을 알게 되고 글을 읽기 시작했는데 드라마속 먼치킨 주인공이 툭 튀어나와 다양한 매력을 시전하며 글로 대화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부당한 체벌 시도에 이런 효과적이고 논리적이며 참신한 대응이라니요.. 분명 한번쯤 드라마속에서 구현될것 같은 에피소드가 아닐지
최근 더 글로리와 3인칭복수를 연속으로 보면서 이 몹쓸 학폭을 최소화 시키려면 어떤 노력과 방법이 필요한건지 알고 싶어졌는데 기회가 된다면 오아영님의 생각을 한번 들어보고 싶군요.. 글 정말 잘 읽었슴니다^^
@gmk0316
예술가들은, 정신의 좌표를 본다면 시중에서 말하는 진보 라는 개념으로는 아우를 수 없도록
저 멀리 최전방에서 진보적인 사람들이기도 한데요
그래서 진보진영이라 칭해지는 집단의 구체적인 정치적 액션에 동의가 안되기도 합니다. 예술가들 입장에선 그조차 너무 보수적인 면이 많달까요.
동시에 예술가들이 지향하는 아름다움 안에는 보수적 가치도 있을 거에요.
영영 변하지 말아야 할 인간성이나 보편가치를 목숨걸고 사수하고자 하는 것이 또한 예술가의 자리기도 하니까요.
다만 진리에 가 닿기를 추구하며 아름다움의 최대치를 추구한답니다. 그래서 급진적이고 그래서 보수적이고 그래서 바보같고 어디에도 속할 수 없기도 하다는 생각이에요.
우리는 그저, 아름다움의 영토 에 속한다고. 그리고 아름다움은 현실에선 무쓸모하기도 하지요. 일단은요.
지식인도 비슷할 거라고 봐요. 중요한건 시중에서 얘기하는 진보냐 보수냐라기보다는 진리 라는 지향(절대적 진리는 아무도 모르는 거지만 그래도 그것이 무엇일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닿으려고 계속 애쓰는 일은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에 입각해서 투명하게 나아가고있는가 일 거라고 생각해요.
@yeonujoo
표현해주셔서 감사해드려요. 그 폭력을 겪어 "주면" 그 폭력을 어쨌든 내 삶에서 몸에서 하나의 작동가능한 샘플로 용인한 거기도 해서요. 그렇게 그쪽으로 포섭되리기 쉬워요. 폭력자체보다도 그게 더 무섭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한답니다.
그치만 내가 좀처럼 막지못한 폭력이란 있을수밖에 없고,
그렇기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구조적 폭력들에 대해서는 걷어내는 작업들을 이후에 함께 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도 해요.
나는 그래서 예술가와 지식인은 진보적이어야 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함.
"정당성 없는 폭력은 악. 악을 내게 가하도록 용인하는 일은 선한 게 아니라고. 악을 용인하면 내 안에 악이 들어온다고. 내게 타인이 악을 가하도록 내버려 두는 건 내가 그 악에 침뱉는 대신 그 악이 내게 들어오도록 용인했기 때문에 나 또한 은연중에 그 악을 타인에게 가할 수 있게 된다고." 고마워요. 이런 좋은 글을 또 읽게 해주셔서요.
아직도 체벌이 이렇게 있었네요. 중학교 들어갔을때 당시엔 나름 밀고 있던 어떤 말을 애들끼리 했던건데 선생님이 잘못듣고 양호실 같은 곳으로 아무도 없는데로 따로 불러서 말그대로 허벅지에 피멍들게 맞았던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팔학군으로 전학간다며 이사갈 때, 그것때문에 이사가냐고 무슨 기타치며 노래까지 불러줬던 미친 노총각 수학선생이 있었는데 그 때의 기억이 새삼ㆍㆍ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 될 수 없는 폭력을 당연하고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던 학창시절이 떠오릅니다. 여중, 여고라 덜하긴 했지만 학생들의 인권이 바닥에 있었던 것은 별반 다를바가 없었지요.
용감한 오아영님의 글 잘 읽고 갑니다^^
@최성욱
실은 이 글은 학생인권조례 폐지 얘기가 나오는 시의에 맞춰서 업로드한 글이기도 한데요,
야만의 시대였어요 정말이지. 어느 시절의 교실은.
후덜덜 하네요 존다고 문진으로 머리 두들기는 체육교사 보았던 과거가 떠올라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