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총과 펜촉은 어쩌면 가장 무서운 무기일지도 모른다.

유니
유니 · 한 줄의 글에도 많은 힘이 있습니다.
2022/04/12
1999년 10월 30일 인천 인현동 상가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사망자 57명, 부상자 79명의 엄청난 피해가 났으며 이는 정부수립 이래 3번째로 큰 규모의 화재참사로 기록되고 있다. 이 사고 피해자의 대부분은 청소년이며 이 사건은 흔히 ‘인현동 호프집 화재참사’라고 보도된다. 
 
얼룩커분들은 위의 사고에 대한 개요를 듣고 어떤 생각이 제일 먼저 나셨는지 궁금하다. 
 
지난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 날 이야기’라는 프로그램에서 ‘인현동 호프집 화재참사’ 이야기를 다루었다. 
 
사건은 ‘라이브’라는 호프집에서 발생했다. 그 날은 인천 일대 중, 고등학교의 시험이나 축제가 끝난 날이라 뒤풀이 자리로 이곳을 택한 학생들이 많아 호프집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 없이 인산인해였다. 이곳은 이른바 ‘민증 검사’를 하지 않는 곳으로 소문이 나서 학생들이 모임의 장소로 자주 이용하는 곳이었다. 
 
사고 당일은 건물 지하 노래방의 페인트 작업이 있었던 날이었다. 2층 호프집과 지하 노래방은 같은 사장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페인트 작업 후 그는 인부들을 돌려보내고 알바생들을 시켜 바닥에 떨어진 페인트 자국을 시너로 닦도록 했다. 그러는 동안 지하는 유증기로 가득 찼다. 한참 일을 하던 알바생은 그 곳에서 담배를 피우기 위해 라이터를 켰고 그 순간 불꽃이 튀며 무서운 속도로 불이 번지기 시작한다. (꼬꼬무에서는 알바생들이 담배를 피우기 위해 불을 붙이면서 화재가 시작되었다고 했는데 나무위키에는 알바생들이 엉뚱한 호기심으로 불장난을 한 것이라고 되어있다.) 
 
건물 1층 식당과 3층 당구장에 있던 사람들은 비교적 빠르게 대피해 대부분 피해를 면했다. 그런데 2층 호프집에서 아이들은 왜 탈출하지 못했을까. 
 
처음 연기를 인지하고 아이들은 불이 났다고 소리를 지르며 출입구로 몰려왔다. 그 순간 호프집 지배인은 문을 막고 아이들을 나가지 못하게 했다. 이유는 ‘돈’ 이었다. 돈을 내지 않은 아이들이 나가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그렇게 ...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