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에게도 허락되는 민주주의

이재랑
이재랑 · 살다보니 어쩌다 대변인
2021/11/16

 열아홉일 때 전국 단위의 청소년 토론 대회를 나갔었다. 어떤 빨갱이가 소개해줬던 것 같다. 지방 선거가 있던 2010년이어서 그랬는지 논제가 마침 '청소년 참정권'이었다. 할 말이 많았다. 고등학교 자퇴생으로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때였다. 

 토론 첫 날엔 교복 입은 놈들은 어떻게 떠드나 들어나 보자는 심산이었는데 역시나 '제도권' 놈들은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청소년들이 미성숙하긴 하지만 그래도 청소년들의 삶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는 교육감 선거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끄덕끄덕) 수준으로 이야기가 계속 맴도는 것이다. 듣고 있자니 너무 답답해서,


 "아, 님들 2008년에 촛불 집회 나가셨죠? 그 때 왜 나가셨어요? 교육감 잘못 뽑아서 나가셨나요? 아니잖아요. 근데 왜 청소년에 대한 정치의 영향력을 교육감 선거 정도로만 한정하세요. 무슨 청소년 권리 제한 토론대회 나오셨어요?"


 라고 따져 물었다. (그 때 이미 난 진보정당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지금도 죄송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어서 한 말은 '투표권을 주고 말고 하는 성숙의 기준이 대체 어디에 있냐'는 것이었다. 열아홉은 되는데 열여덟은 안 될 거 없지? 그럼 열여덟은 되는데 열일곱이 안 될 이유가 무어냐? 아니 열일곱이 될 것 같으면 열다섯은 왜 안 돼 ... 그래서 그냥 다섯 살부터 투표권을 주자,고 어그로를 끌어버렸는데(다시금 죄송하게 생각한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다.


 “일부 사람들이 아직 자유를 누릴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는 가정을 받아들인다면, 자유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누구나 이미 자유를 획득하지 못하고서는 자유를 누릴 만큼의 성숙에 이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칸트).”


 청소년 참정권의 본질은 당연한 권리이자 자유라는 것이다. 또한 그 자체가 성숙에 이르는 과정이다. 어그로를 끌기 위해 다섯 살부터 투표권을 주자고 했지만, 또 부모님과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투표장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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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정의당/청년정의당 대변인 (~2022) 10년 차 사교육 자영업자. 작가가 되고 싶었고, 읽고 쓰며 돈을 벌고 싶었고, 그리하여 결국 사교육업자가 되고 말았다. 주로 학생들의 한국어 능력과 시험성적을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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