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그리다

황용순
황용순 · 직장인이며 틈틈이 글을 씁니다
2023/10/11
스물다섯이 넘은 이후로 되도록 거울을 보지 않으려 했고 사진도 찍지 않으려고 했다. 그때부터 책을 읽지도 않았고 음악도 듣지 않았다. 대신 매일 술을 마셨고 그 덕분에 매일 설사했다. 설사하면서도 내 몸은 점점 비대해졌다. 설사로 내 안에서 빠져나가는 것들은 뭘까? 형은 술만 마시면 자신의 머릿속엔 똥만 가득 차 있다고 말하며 울어댔다. 똥을 쌀 때마다 머릿속이 텅텅 소리를 내며 비워지는 상상을 했다. 
   
자화상을 그리려고 거울을 들여다본다. 낯설다. 낯선 내가 나를 보며 비웃는다. 그 웃음소리는 내 뼈를 못으로 긁어대는 소리처럼 들린다. 소리는 거울을 보지 않는 순간에도 내 귓속을 아프게 자극한다. 나를 보며 웃어대는 나는 누구인가? 내가 그를 그릴 수 있을까? 다시 그를 본다. 여전히 낯설다. 좀 전에 본 얼굴과 또 다른 것 같은 느낌. 그의 얼굴은 시시각각 형체를 달리하는 구름처럼 보인다. 볼 때마다 형체를 달리하다 곧 사라질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구름.
   
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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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출생. 죽은 줄 오해되었으나 단지 온몸이 뒤틀린 채로 태어난 거였다. 1991년 죽기 위해 떠돌다 우연히 『소멸을 위한 전주곡』이란 시집을 발간 2022년 넘어지기만 했던 흔적들을 모아 30년 만에 두 번째 시집 『어글리 플라워』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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