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죽을 무렵 소련과 연합한 영·프·러도 ‘공산 전체주의’ 세력인가(경향신문 김종목 기자 2023.09.01.)

박선욱 · 시, 동화, 소설 및 평전을 씁니다.
2023/09/02
홍범도 죽을 무렵 소련과 연합한 영·프·러도 ‘공산 전체주의’ 세력인가
경향신문 김종목 기자 2023.09.01.
   
논문으로 본 ‘홍범도와 자유시 참변’
   
육군사관학교 홍범도(1868~1943) 동상 이전 결정 과정에서 불거진 가장 큰 논쟁거리는 ‘독립운동사상 최대의 비극’이라 불리는 ‘자유시 참변’이다. ‘홍범도 학살 개입’ 같은 단정적 제목을 단 보도는 동상 설치 때부터 등장했다.
참변 때 홍범도가 다른 단체 독립군을 죽이는 데 가담했다는 기록은 없다. ‘홍범도가 자유시 참변 때 소련 정부 편을 들었다’는 말도 나오는데, 자유시 참변은 1921년 6월 벌어졌다.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은 이듬해인 1922년 들어섰다.
홍범도와 자유시 참변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논문은 윤상원(전북대 사학과 교수)의 ‘홍범도의 러시아 적군 활동과 자유시사변’(2017)이다. 논문 주된 내용은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홍범도가 러시아 적군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참변 때 홍범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좇아간다.
   
한인 무장부대 대립 속 홍범도, 코민테른 고려혁명군정의회 힘 실어줘
   
1921년 3월 초까지 자유시에 집결한 한인 무장부대 군인 총수는 대략 2000명 정도다. 6월에는 약 3000명에 이르는 한인 독립군들이 자유시에 모인다. 한인 무장부대는 양분된다. 러시아 공산당 극동공화국의 지원을 받는 상해파 고려공산당 계열의 대한의용군(사할린의용군)과 코민테른 극동비서부의 지원을 받는 이르쿠츠크파 계열의 고려혁명군이 지휘권을 두고 대립했다.
코민테른 극동비서부는 두 파의 대립을 조정하려고 고려혁명군정의회를 설치하고 총사령관에 칼란다리쉬빌리를 임명한다. 홍범도는 6월 2일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마자노프를 떠나 자유시로 이동한다. 윤상원은 이 이동을 두고 “간도로부터 이동해온 독립군부대 대부분은 이제 통합의 주체를 고려혁명군정의회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말한다. 인정 이유는 “‘무장부대 통합’이라는 명분과 ‘소련 및 코민테른의 권위’에 대한 인정, 그리고 ‘무기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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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실천문학》 으로 등단. 시집 《회색빛 베어지다》 《눈물의 깊이》 《풍찬노숙》, 인물이야기 《윤이상》 《김득신》 《백석》 《백동수》 《황병기》 《나는 윤이상이다》 《나는 강감찬이다》 등. 《윤이상 평전: 거장의 귀환》으로 제3회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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