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부리가면을 쓴 사람들과 '최초의 대유행'

곽경훈
곽경훈 인증된 계정 · 작가 겸 의사
2023/02/24
2021년 한국, 보호구를 입은 사람들
하얀 방역복은 언뜻 스키복 혹은 점프슈트(스카이다이빙을 할 때, 착용하는 복장)를 떠올리게 한다. 몸통에 팔과 다리가 붙은 일체형 의복이며 골반 위쪽부터 목까지 이어지는 지퍼로 입고 벗는 것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물론 스키복과 달리 방역복에는 모자도 달려있다.) 그래서 방역복을 입으면 손과 발, 얼굴만 드러난다. 당연히 이렇게 드러나는 부분을 방치할 수 없다. 발에는 덧신을 착용한다. 손에는 일단 작은 치수의 수술장갑을 낀 다음, 조금 큰 치수의 수술장갑을 겹쳐 착용한다. 얼굴도 마찬가지다. 우선 N95마스크를 착용한다. 이때는 마스크를 얼굴과 밀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마스크를 낀 다음, 힘껏 숨을 불어내고 들이마시는 것을 반복해서 마스크와 얼굴 사이의 틈이 있는지 확인한다. 그런 다음, 고글 혹은 페이스실드를 착용한다. 

수백 번을 반복해서 이제는 익숙한 과정,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습관에 따라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과정을 마치면 요란한 불빛과 함께 구급차가 도착한다. 도로를 달릴 때는 날카로운 싸이렌도 울렸겠으나 응급실 근처에 다다르면 불빛은 번쩍여도 요란한 싸이렌 소리를 끄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이다. 

"최초 신고내용은 의식저하였습니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하니 체온이 39도이며 혈압이 60/40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기침과 가래를 호소했다고 합니다."

나와 비슷한 복장을 입은 구급대원이 구급차에서 이동식침대를 내리면서 빠르게 말했다. 보유주머니(reservoir bag)가 달린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환자는 심한 통증에도 거의 반응하지 않을 만큼 의식저하가 심했고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보유주머니가 달린 산소마스크'는 인공호흡기를 제외하면 가장 짙은 농도의 산소를 투여하는 방법이라 즉시 인공호흡기 연결이 필요했다. 그래서 환자를 신속하게 격리실에 수용해서 기관내삽관(endotracheal intubation)을 시행하기로 했다. 기관내삽관을 시행하지 않고는 인공호흡기를 연결할 수 없기 때문...
곽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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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권의 메디컬에세이를 쓴 작가 겸 의사입니다. 쓸데없이 딴지걸고 독설을 퍼붓는 취미가 있습니다. <응급실의 소크라테스>,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반항하는 의사들>, <날마다 응급실>, <의사 노빈손과 위기일발 응급의료센터>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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