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셰프스키. 흙당근 같은 음악
2023/03/04
피오트르 안데르셰프스키. 흙당근 같은 음악
바흐, 시마노프스키, 베베른, 베토벤
지난 2월 27일 풍월당에서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피오트르 안데르셰프스키(Piotr Anderszewski)의 대담이 있었고, 다음날인 28일에는 롯데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기획: 인아트)이 있었다. 우리 시대의 중요한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 사람인 그의 리사이틀에 대한 소회를 간략히 나눈다.
안데르셰프스키의 음악은 매순간 새로웠다. 그의 바흐는 특별했다. 마요르카에 바흐의 평균율 악보만을 들고 갔다던 쇼팽이라면 저렇게 연주하지 않았을까. 그만큼 유연하고도 향기로웠다. 그런데 이 향기는 은은하게 감돌며 음악의 몸체를 휘감고 있는 것 같았다. 비유하자면 마치 흙당근처럼 음악이 올라오는데 그 당근 같은 음악 몸통에 묻어 있는 흙이 향기이고 또 침묵이어서 매순간 귀 기울여 듣지 않을 수 없게 했다. 뽑는 당근마다 다르고, 딸려 나오는 흙빛 흙향이 다 다르니 안데르셰프스키는 매번 연주가 다른 음악가겠구나 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음악의 몸체는 혹시 고정적인 음표로 그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음악의 향기가 지니는 그 은은한 움직임은 때로 정해져 있다고 여겨지는 음의 흐름과 형상에도 변하는 인상을 부여해 주었다.
그는 물론 구조를 중시한다고 말했지만, 그가 불러내는 구조는 기계적이거나 차갑지 않았다. 음악은 움직이고 생동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시간과 함께 흐르는 역동의 구조이기 때문에 온기와 상상력, 머뭇거림과 달음질의 긴장감이 구조 안에서 여전히 살아 돌아다닌다. 그는 구조 안에서 사는 그 음악적 생명을 찾아내려는 듯 극도로 몰입하면서도 주위 모든 세계와 여전히 연결되어 있었다. 몰입할수록 그의 귀는 더욱더 열려 한 음 한 음과 조응하고 있었다. 느끼고, 연주하고, 듣고, 또 관객들에게는 어떻게 들릴까 생각하고 그래서 우리는 그와 함께 음악의 살아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그는 물론 구조를 중시한다고 말했지만, 그가 불러내는 구조는 기계적이거나 차갑지 않았다. 음악은 움직이고 생동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시간과 함께 흐르는 역동의 구조이기 때문에 온기와 상상력, 머뭇거림과 달음질의 긴장감이 구조 안에서 여전히 살아 돌아다닌다. 그는 구조 안에서 사는 그 음악적 생명을 찾아내려는 듯 극도로 몰입하면서도 주위 모든 세계와 여전히 연결되어 있었다. 몰입할수록 그의 귀는 더욱더 열려 한 음 한 음과 조응하고 있었다. 느끼고, 연주하고, 듣고, 또 관객들에게는 어떻게 들릴까 생각하고 그래서 우리는 그와 함께 음악의 살아있음을 경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