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와 소설의 마법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06/20


건강하고 즐거운 소설은 마법을 부리곤 한다. 코를 풀고 버린 휴지처럼 바닥에 구겨져 있다가도 좋은 소설을 보면 '그래, 세상에 이렇게 재미난 게 많았지!' 하고 벌떡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좋은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봐도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고 나온 듯이 개운해지곤 하지만, 벅찬 감동과 오랜 여운에 젖어 삶의 관점까지 어느 정도 바뀐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은 소설을 봤을 때만 그렇다.

요전에는 "잡동사니의 역습"이라는, 저장 강박에 대한 교양서를 '우리 가족이 다 이런데요?'하고 아주 심각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재미있게 읽었다. 정신쪽으로든 육체쪽으로든 건강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어쩔 수 없는 법인지 잠을 미룰 정도로 몰입해서 열심히 봤다. 하지만 감동에 젖거나 활력이 샘솟지는 않았다. 애초에 ‘저장 강박, 이렇게 하면 반드시 극복한다’ 또는 ‘아무리 쌓아놔도 괜찮아’ 라는 식의 작품은 아니었으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아무튼 텍스트마다 역할이 다르다는 뜻이다.

며칠 전에는 영화로도 유명한 "마션"의 작가 앤디 위어의 신작,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몹시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이 너무 재미있어서 자야 할 때 자기가 싫어지는 것은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요즘은 마음에 들 정도로 재미난 것을 발견해도 케이크 위의 딸기를 나중에 먹듯이 아껴서 조금씩 보는 경우가 많은데, 도무지 그런 인내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내가 재주 좋게 마음에 쏙 드는 책만 골라 읽는다 해도 올해 안에 이보다 더 재미있게 읽을 소설을 찾긴 어렵지 않을까?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초반은 이렇다. 주인공은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서 깨어나서 기억 상실에 시달린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과학 지식에는 아주 해박해서 이런 지식과 추론을 바탕으로 자기 상황에 대한 진상을 밝혀내는데, 주인공 그레이스는 알고 보니 과학자고, 우주에 빛을 흡수해버리는 괴생명체 군집이 나타나서 멸망할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하기 위해 다른 별까지 자살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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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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