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마 전쟁, 그리고 '외퀴'

어제 오늘 케이팝 판에서 논란이 되었던 떡밥 하나를 꼽자면 이것이 아닐까 합니다.

"BTS 스토킹하냐"…LA콘서트서 현지 팬들, 한국 팬에 폭언·폭행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120309374824236


이번에 LA에서 열린 방탄소년단 콘서트에서 한국인 팬들이 미국 팬들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것인데... 진위 여부가 완벽하게 가려진 것은 아닌 것 같긴 한데 일단 사건 자체는 상당히 개연성이 높아 보입니다. 왜냐면 기사에서 소개된 갈등은 '홈마'를 둘러싼 오랜 논쟁과 한국 케이팝 팬덤에서 외국의 케이팝 팬덤을 일컫는 멸칭인 '외퀴'와 관련하여 이미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간략하게 홈마부터 알아볼까요(뭐 이미 대부분은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만).

홈마는 원래 '홈페이지 마스터'를 일컫는 말인데,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아이돌들의 사진을 준 전문적인 수준으로 찍어 올려서 배포하는 열성적인 팬들을 뜻합니다. 홈페이지의 시대가 가고 SNS가 확산되면서 이제는 SNS에 사진을 주로 올리게 되었지만 그 시절 언어의 흔적이 남아 계속해서 '홈마'라 불리는 것이죠.

홈마의 중요한 특징이라면 대략 두가지라 할텐데

1. '대포'로 상징되는 빵빵한 장비와 상당한 보정 실력
2. 어지간한 공개 스케줄을 모두 따라다닐 정도의 정성(심지어 외국까지도)

이들은 아이돌 팬덤 생태계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합니다. 흔히 '헉' 소리 나오는 아이돌 사진들이 많은 경우 그런 홈마들의 손에서 탄생했고, 팬을 계속해서 유입시켜주는 미끼 상품이자 지속적인 '덕질'의 동력을 만들어주기도 하죠. 게다가 바이럴이라도 잘 타서 대중에게까지 알려지면 더욱 좋은 일이고요. 스타들도, 기획사들도 홈마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유명 홈마들과는 일종의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어 놓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유명 홈마가 새로운 아이돌에 붙으면 그거 자체로 화제가 되기도 하고요.
이달의 소녀 희진

물론 홈마는 케이팝 팬덤에서 오랜 논쟁의 대상이 되어 온 존재기도 합니다. 스케줄과 관련된 문제, 홈마 자체가 팬덤에서 권력화되고 '친목질'을 하면서 발생하는 문제, 특정 멤버와 관련된 악개 문제 등등등..... 하지만 이러한 장구한 논쟁이 대충은 정리되고 현재는 홈마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그들의 활동 문화나 패턴도 대강은 자리 잡힌 분위기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찍은 사진을 모아서 아마추어 포토북을 만들어 팬에게 팔면서 팬덤 경제의 중요한 축을 구성하고 있기도 하죠(스타급 홈마라면 큰 돈도 벌겠지만 대다수는 장비값과 인건비 건지기도 힘든 팬심 기반의 힘든 활동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홈마 문화가 케이팝이 처음 세계화 되었을 때, 특히 한국과 지리적 거리와 문화적 이질성이 심했던 서구권으로 퍼졌을 때 상당한 분란 요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외국 팬덤(주로 서구권 팬덤)이 홈마 문화를 전적으로 배척하는 것은 아닙니다. 케이팝 팬덤은 그룹별로, 국적별로, 성별별로 아주 다양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죠. 실제로 Homma, Masternim(홈페이지 '마스터님') 등의 단어가 외국 케이팝 팬덤에 퍼져나가 활발히 쓰이고 있고, 현지 홈마들도 발생하여 글로벌 케이팝 팬덤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이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죠.

일부 외국 팬덤, 특히 방탄소년단의 북미권 아미들이 한국의 아미들과 일종의 주도권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과거 케이팝이 지금보다 훨씬 소수의 전유물이었을 때, 그리고 기획사와 아티스트들도 글로벌 시장을 딱히 신경 쓰지 않으면서 활동할 때, 대부분의 외국 팬덤은 '부수적인 소비자'들이었습니다. 그들도 이를 잘 알았기 때문에, 케이팝의 종주국인 한국 팬덤의 헤게모니와 수위권을 인정해주면서 그 문화를 일정 부분 수용했죠. 그러나 케이팝이 글로벌로 뻗어나가고, 글로벌 팬덤이 돈이나 실적 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이러한 관계는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일단 외국 팬덤들이 각국의 분위기에 맞춰서 독자적인 팬덤 문화를 형성하였고, 그 다음에는 헤게모니를 지닌 한국 팬덤을 비판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팬덤 입장에서도 케이팝의 글로벌화에 따른 불만은 계속 누적되어 갔습니다. 자기가 팬질하는 그룹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까지는 좋은데, 정작 국내 활동에서 더 보기 힘들어지고, 한국 그룹으로서 한국 팬덤이 주장할 수 있는 당연한 우선권도 주장할 수 없게 되는 것 같고, 기획사도 뭔가 외국에 더 많은 공을 들이는 것 같은 분위기로 흐르는 것 같고... 그런데 외국 팬덤이 갑자기 한국의 팬덤 문화를 비판하니 더욱 뿔이 날 수밖에 없었죠. 그런 맥락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된 외국 팬덤에 대한 비하 용어가 바로 '외퀴'였습니다. 한국 팬덤과 외국 팬덤의 갈등은, 외국 팬덤의 화력이 더 강성하고 그룹의 글로벌 시장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인기 그룹에서 더 크게 발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니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펼쳐진 방탄소년단의 세계적 성공이 이런 갈등을 한 단계 더 올려놓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 아미의 중심은 미국이다"라는 혁명 선언이랄까요.

그러면 이들(외국 팬덤 중 일부)은 왜 홈마 문화를 비판하는 것일까. 대체로 '대포 카메라가 아이돌들에게 위협적이다', '스토커, 파파라치 같다', '사진 팔아서 왜 돈 벌이 하냐' 등이 이유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외국 팬덤의 비판은 상당 부분 한국에서 이미 오랜 논쟁 끝에 자리 잡은 한국의 팬덤 문화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기획사-아티스트-홈마-팬덤 간의 전략적 제휴와 공생 관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케이팝 문화의 모습도 상당히 달랐을 것, 그리고 심심했을 것은 틀림 없습니다. 한국 팬덤은 "홈마 패는 지들도 다 홈마 사진 보면서 팬질하니 이중성 짜증난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결국 정체성을 둘러싼 싸움에서 한국 팬덤에게 어떠한 방식으로든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케이팝의 종주국이 절대 될 수 없는 데서 오는 어떠한 한의 정서가 그들로 하여금 홈마 문화를 공격하도록 만든 것이 아닌가 한데요... 한국 팬덤과 외국 팬덤의 갈등 초점, 특히 '외퀴'라는 비하로까지 이어지는 것들을 보자면 대체로 외국 팬덤이 기본적으로 한국 내의 사정과 문화에 대해서 익숙하지 못하고 배우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아서 생기는 일들이 많습니다. 제가 한국인이라서 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요...일전에 소개하기도 했었던 '홍인론'도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케이팝은 화이트워싱을 행한다"는 외국 팬덤의 비판에 한국 팬덤들이 "동북아인이 따지고 보면 백인이고, 구미권 코카소이드들은 '홍인' 아님?"이라고 맞받아치는 것인데요. 문화적 중심과 주변의 전복을 이만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도 찾기 어려울 듯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제가 제일 보기 껄끄러운 글들은, 간혹 미국에서 거주하시는 분들이 미국에서 주로 행해지는 케이팝에 대한 비판을 그대로 수입해서, "미국에서 이러한 비판이 있으니 한국의 케이팝 생태계는 이러한 비판을 수용해야한다"는 훈계를 할 때입니다. 케이팝은 미국의 XX 문화에 대한 감수성을 더 갖춰야 한다, 라는 식인데요. 특히 인종 문제와 관련해서 가장 많이 나오는 글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러한 글들이 기본적으로 여전히 한국을 문화의 변방에 놓고 미국/유럽 등 서구 구미권을 문화의 중심에 놓는 관성적 사고의 반영이라고 생각합니다.

케이팝의 표준은 LA, 뉴욕, 런던 같은 곳에 있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발원하여 서울을 중심으로 하고 있고 한국의 특수한 문화적 맥락에 굉장히 깊게 착근해 있는 문화입니다. 물론 케이팝은 현재 새로운 표준을 써가면서 새로운 종류의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는 중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제 '한국의 특수한 문화적 맥락'은 케이팝 생태계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다른 곳이 배우고 수용해야 할 '보편적 표준'입니다.

물론 이런 것이 한국, 혹은 한국 팬덤 문화가 외국의 다른 팬덤과 그들 문화에 대하여 위계성을 자동으로 부여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분명 한국 팬덤 문화에도 아주 많은 잘못된 문제들이 있고, 외국 팬덤에서 그것을 비판 했을 때, 비판점이 타당하다면 당연히 수용을 해야 하겠죠. 하지만 거의 일방적인 수준으로 "서구권에서 케이팝을 두고 이러이러하게 말하니 저러저러하게 고쳐야 한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태도라고 생각됩니다.

홈마 문제를 제쳐 놓고서라도, 대표적으로 인종 감수성 문제를 들여다볼까요. 케이팝이 미국 흑인 문화로부터 많은 요소를 차용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흑인들이 케이팝이 일종의 '문화적 전유'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찍이 '우탕 클랜' 등에서 보이듯이 미국 흑인도 아시안 문화를 특색 있게 차용하고 자신들 문화에 녹여낸 역사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과민 반응이 아닐까 하죠. 무엇보다, 문화적 전유라는 것이 주류 민족인 백인이 원주민, 흑인 등 소수 민족의 문화적 상징물만 따오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것인데, 애초에 미국 사회에서 주류 민족이 되어 본 적도 없고 제국주의의 역사로 따지면 식민지로서 피해자로 살아왔던 한국인들에게 이런 기준을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지 물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 됩니다.
오죽하면 기생충에는 '유색인종'이 나오지 않는다'는 비판도...

따라서 이제는 외국에서 발생하는 케이팝 논의, 논쟁에 대해서 어느 정도 당당히 요구를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너희는 모르는 한국의 특수한 사정과 복잡한 맥락들이 있다. 일단 이에 대해서 조금 더 사실관계 및 관련 논점을 명확히 파악하고 비판을 제기하면 어떨까?"
https://www.youtube.com/watch?v=lDY8rGDqlpQ
"너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라는 외국 팬에게 "일단 한국어 공부하세요"라고 하는 것이 이제는 이상한 일은 아닌 시대라는 것입니다.

지난 200년 간 서구 문화는 지구적 보편이었고, 서구인들도 그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오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이 새롭게 지구적 보편을 써나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인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안겨주지만, 예상치 못한 방향의 문화적 충돌들을 동시에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케이팝을 중심으로 하여 한국과 나머지 세계가 갈등을 현명히 관리하고 다양성이 주는 역동성과 창조성을 어떻게 하면 극대화할 수 있을지 더욱 많은 고민이 필요해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