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너가 내 뒷모습을 볼 차례
2023/10/13
우리에겐 경계가 없었다. 너네 집이 내 집이었고 내 가방이 네 가방이었다. 같은 동네에서 자라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같은 반에서 만나 중3, 고2, 고3까지 같은 반이었다. 한 반에 45명씩 13개 넘는 반, 그러니까 600명 정도 되는 학생들을 무작위로 배정하는 학급에 6년 중 4년을 같은 반에서 생활한 내 단짝친구 운명이었다.
우리는 많이 같고 많이 달랐다. 소처럼 크고 쌍꺼풀진 눈에 약간은 튀어나온 안구. 동남아를 지나 아랍권 인종 같아 보인다는 까무잡잡한 피부까지. 동네사람들은 늘 꼭 붙어 다니는 우리를 자매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눈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봤고, 이북식 슴슴한 음식 맛만 알던 내 혀는 그녀 엄마가 건더기 수프 빼고 고춧가루를 한 스푼 더해 끓여주는 신라면에 얇고 기다란 파김치를 오므린 입술로 호록거리며 면에 얹어 먹을 때 짜겁게 매운맛을 익혔다. 내가 강타오빠에게 편지를 쓰면 그녀는 웨스트라이프의 키안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싶어 했다.
그녀의 언니가 손목을 연필로 찔렀던 날 밤도, 내 가족이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실려갔던 날 밤도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아무 말 없이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녀 아버지 공장에 큰 불이 났을 때도 내 아버지가 사기를 당해 회사를 그만두고 개인 사업을 시작할 때도 우리는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괜찮다는 말도 필요 없었다. 서로의 불행을 쪼개 한 입씩 베어 물면 불안에 요동치던 심장이 고요해졌다.
잠자는 시간 빼고는 하루종일 붙어 다녔던 우리. 아침 7시 30분부터 학교에서 만나 하루종일 수업을 같이 듣고도 특별활동, 동아리 심지어 종교활동도 함께했다. 빛이 없으면 사라지는 내 그림자보다 더 가까웠던 우리는 서로에게 공기 같은 존재였다. 둘은 다툴 일도 없었다. 좋아하는 남자, 음식, 옷 등 취향이 완벽히 달라서 더 그랬다. 공부도 성적도 뭐든 비슷했다. 꼭 잡은 두 손 사이로 시기나 질투심 같은 건 끼어들 새가 없었다. 빗나간 큐피드의 화살도 우리를 갈라놓진 못할 만큼.
그녀가 너무 좋아해서 그의 작은...
사람과 세상을 깊이 읽고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전업 작가, 프리랜서 기고가로 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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